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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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거장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많은 이들이 알아서 생면부지인 사람들도 애도를 표하기도 해서 떠나는길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외로운것은 위안이 되지만, 그래도 떠나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장이든 아니든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이든 아니든, 나에게 적지않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똑같이 힘든 일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그러했고, 티켓팅까지 성공했으나 공연 취소로 결국 만나지못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 류이치 사카모토 등이 그러하다.
그들의 작품을 좋아했을뿐 개인사를 빠싹하게 알고있지는 않았지만 며칠동안은 참 슬펐었다.

그런 슬픔이 최근 1년에 두번이나 더 있었다.
뉴욕삼부작으로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충격을 준 #폴오스터 와 야매(?)신도 이지만 그래도 내 종교의 대표자 교황 포프 프란치스코님 까지.

믿기지 않게 떠나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게 소식이 들려오지않으면 내가 기억하고 상상하던대로 잘 살고 있겠지 라는 먹연함때문에 생겼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무책임한 막연함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은 더 무책임하게도 아프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이 편안했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돌아볼만큼 너무 갑작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전날인 부활절을 맞이하여
전 인류의 행복을 축언하시고 떠나셨고, 폴 오스터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는 듯한 소설도 안녕을 고했다.

심리치료방법 중에 자기의 괴로웠던 일들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어디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일들을 글로 적어냄으로써 감정을 분출하고 그때의 나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상기하기에 너무나 끔찍하다면 방어기제로 주인공을 자신과 다르게 설정한다고, 성별 나이를 바꾸거나 내가 동쪽에 산다면 글 속 주인공은 서쪽끝에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
올해를 뜨겁게 달구고있는 ‘나의 작은 무법자’또한 작가가 그러한 방법으로 쓴 책이다.

#바움가트너 (#열린책들 출판 #폴오스터 지음)도 일종의 자화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가 자신의 인생을 총 망라하는 글을 쓴다는 설정도 폴 오스터가 <바움 가트너>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땅에서 살아가며 겪은 유년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아내의 사망유무나 시점이 다르긴 하지만/ 폴오스터의 아내는 꾸준히 글을 발표하는 시인이다, 바움 가트너의 아내는 평생을 바쳐 쓴 글이 있으나 발표하지 못했다. 그 글을 읽으며 바움 가트너는 일생을 돌아본다)가 비슷한 인생의 시기를 맞이한 바움 가트너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특별한 소재에서 특별한 감정을 뽑아내던 폴 오스터가 말년의 말년이 되어서 특별하다 할 것 없는 바움 가트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로 적어보니 위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특별하네)

가트너 라는 성이 정원사 라는 뜻이란다.
얼기설기 얽혀서 원래의 모양이 알지못할 정도로 원래의 형태를 잊어버린 나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원래모습으로 생생하게 만드는 것처럼 가트너는 잊고있던 케케묵은 기억들을 다시한번 들춰내서 잃어버렸던 회색빛 삶을 생생한 천연색으로 돌려나간다. 그 힘으로 노년임에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응 시작한다.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폴 오스터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신변을 정리한다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끝을 준비하는게 아니라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얼마남았을지조차 확실하지않은 ‘내일’을 귀하게 여길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라고.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지막을 앞둔 당사자나 그 당사자옆을 지키는 주변인들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소설의 특징은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전지적인 시점으로, 또는 1인칭의 시점으로 기꺼이 경험하게 하고 그로 강한 몰입을,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장르소설의 대표인 가상공간물 같은 느낌이랄까.
캡슐 같은 첨단 과학의 힘을 빌리지않아도 누구나 강력하게 다른이의 삶을 강하게 경험하도록 하는것. 그렇게 내 삶에 다른 삶에서 배운 것을 새기는 것.

그것이 소설이고, 소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폴 오스틴의 <바움 가트너>를 통해 다시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소설은 쓸모없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이던 나를 반성하며. R.I.P.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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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소크라테스 지음, 정상희 엮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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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여전히 인류에겐 철학과 사상은 되게 중요한 학문이자,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비하를 받기도한다.
그만큼 매 순간 사유해야하는 학문이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사유라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이며, 그 역사가 유구하며, 철학사상들을 모르는 사람들도 철학이라는 학문은 누구나 알고(들어왔고) 철학자 한명씩은 이름을 알고있다.

기원전 시대의 사상가이며 철학자들이
상식처럼 이름이 머리속에 박혀있으니 말 다 했지.

수천년동안 인간 스스로도 예상치못한 속도로 진화해 오면서
마찬가지로 그와 비슷한 속도로 발전해왔을 철학에서도, 그 뿌리가 되는 원류격인 철학자와 그의 이론들은 꾸준히 회자된다.

#나는내가모른다는것을안다 (#포레스트북스 출판)의 저자도 스승 #소크라테스 와 제자 #플라톤 이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누구나 이름은 알고있는 유명인사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명언도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하다.

저자가 둘인 이유는 그들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책이기 때문이고, 소크라테스의 철학들은 대화를 기반해서 꽃피웠다 라는 것늘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책으로 엮은 저자는 플라톤이 분명하고
그가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세 편이 이 책에 담겨있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이는 자신이라는 신탁을 듣고 신탁의 진실됨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함께 대화를 나눈 이들도 무지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로인해 진정한 지혜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무지의 자각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이런 깨달음은 당시 기득권자들에게 자신들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누명을 씌워 사형을 내린다.

형 집행전에 크리톤이 찾아와 대화를 한 것이 <크리톤>인데, 탈옥을 하자며 크리톤이 말하니 악법도 법이라며 지켜야한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불복하고 날뛰지 않으며, 생존보다 그릇된 행동으로 영혼이 타락하는 것을 더 나쁘다고 말하며 침착하게 순순히 형을 받아들인다.

이후 사형이 집행되어 독을 마시기 직전 제자들과의 대화가 담긴 <파이돈>에서는 그는 죽음이후에 영혼이 더 나은 세계로 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 올바른 영혼을 위해 삶을 살아왔다고 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은 무지함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며, 영혼은 육체보다 값지고, 죽음은 끝이아니라 오롯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어쩌다보니 요즘 자기계발이나 행복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보게 되어서 그런지 그런 책들에서 하는 말들과 소크라테스의 말이 합쳐져서 생각이 되더라.

무지함을 깨달으면, 삶에서 선택하는데에 있어 틀려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부담을 덜며 선택하고, 실패에서 겸허히 배우며 나아가면 되고 그러한 일말의 과정들이 기쁨이자 행복이라고.
어차피 우리의 모든 선택의 결과는 죽음이라며,
(삶은 B'birth' 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 라고 하지않나)그러니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삶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들이 행복이니 매순간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도 습관을 들여야한단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실패도 깨달음을 느낄 수 있게 해 감사한 것이고, 최선을 다한 그 경험도 값지고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물리적,금전적,사회적 성공이 행복이 아님을.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아끼고 노력하고 성실하며, 감사히 나아가는 것. 얻은 것을 기꺼이 나누고 다른사람에게도 배우는 것.
’삶‘이라고 느껴지는 이러한 생각이 ’행복‘과 동일한 것이 되게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책들을 읽다보면 집중하는 부분들은 다를지언정
크게 공유하는 부분들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물론 객관적으로 많지도, 다양하지도 않지만
읽었던 내용을 기록하니 좀 더 머리에 남고, 이 책을 읽다보면 저책에서 했던 비슷한 말이 떠오르고 나름대로 통합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몹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책의 내용이 나의 인생의 한 모습과 닮았을 수도 있고, 내가 읽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했던 것과 닮았을 수도 있다. 그런것들을 발견해나가면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적극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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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 행복을 습관으로 만드는 하버드 명강의
유키 소노마 지음, 정은희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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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좋은 연인을 만나기 위해,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위해, 자식 대학 및 결혼을 위해, 노후를 위해 인간은 태어나고 기억에 남는 시기부터 눈 감는 그 순간까지 항상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다.

응당 그래야 하기때문일까?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대부분이 지쳐서 나아가지 못했을것이다. 그런데 인류 대부분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좀 더 궁극적인 원동력이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생각한 그 원동력은 바로 ‘행복’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구심이 든다. 행복이라는 것은 감정의 한 부분일텐데 지금 괴롭게 노력하는 것이 행복을 위해서라고?
지금 당장 행복한 것을 하면 그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말을 하면 순간 흠칫하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란다. 단순한 욕망이라고 지금 하고픈 것을 다하면 나중에는 더 힘들어진다며 훈계한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훈계를 듣는 나도 흠칫하며 훈계를 하는 상대방도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사랑하고어떻게행복할것인가 (#유키소노마 지음,#북플레저 출판)은 하버드 대학의 전설의 수업 ‘행복 수업’을 기반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행복은 내가 생각했던대로 감정일까? 아니면 어떠한 선택일까,기회일까. 모든 것들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치환하면 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에서 행복이란,
습관 또는 연습이라 말한다.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조금씩 인식하고 만들어 나가는것.

“행복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라는 책 속 문장이
나를 강하게 흔들었다.

무언가를 달성해냈을때가 행복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가
이것이 행복의 열쇠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았다.
모든 것을 참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을때의 모습을.

우스갯 소리로 원하는 것을 얻자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원하는 돈을 벌었을 때, 잃어버린 건강 때문에 들여야 하는 돈이 더 많이들고, 하고팠던것을 할 체력이 되지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각이났다.

이게 과연 맞는건가? 내가 생각한 행복인가?
물론 돈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의 부를 축적했을때 건강할 수도 있다.

이러한것들도 다 맞는 말이다.
경제적부가 가져다 주는 행복은 연봉이 일정수준 올라가면 더이산 채워지지않고, 원하는만큼의 부를 축적했는데도 건강하다면 부를 축적하는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동안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 등을 포함해 그과정을 스트레스 받지않고 즐겨야(행복하게 해야) 달성할 수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보여지는 모습에는 정답이 없다.
돈을 많이버는 것, 큰 집에 사는것, 많은 자식을 낳아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어느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모습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다.
강요하여서도 안되고, 나의 행복을 누군가에게 구하여서도 안되는 것이다.

행복은 결국 내가 선택하고, 반복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적용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견해야 한다.

사회화가 고도로 진행되다보니, 인간의 모든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너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눈치를 보는데 어떻게 행복 할 수 있겠나.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제목에서 부터 모든것이 담겨있다.
무언가를 자기 스스로 남의 눈치 하나도 보이지 않을만큼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라.
무언가를 찾는 과정도, 찾은 순간도 모두 행복이다.
이미 찾았어도 행복이다.

내가 진정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것을 찾고 발전해나가고 앞으로 나아가는것. 그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인 것이다.

모든 것들은 익히는 데서 시작되고, 익숙해지면 그것은 삶이 된다. 행복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행복을 어떠한 이루어야하는 목표와 동의어로 생각한다.

틀렸다. 하루하루, 매분 매초, 매순간 작은 선택과 삶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감사하고 흥미있어하고 즐기는것.
그 과정, 우리 인생의 모든 흐름에 행복이 담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행복해지고 싶은데 무엇이 행복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면,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읽으면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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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다 : I AM THAT I AM -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라
네빌 고다드 지음, 홍주연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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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올 한해 목표를 독서로 잡으면서
처음으로 읽기시작한 분야가 자기계발이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자라는 큰 목표의 세부목표로 독서를 설정해서 그런지 다른 분야를 읽으면 뭐랄까 농땡이(?)부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때문이었다.

유명 유튜버의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술술 읽히는 자기계발 서적에서 시작해서 저자들이 추천하는 자기계발의 원류, 이른바 구루(guru;스승,권위자,전문가)들의 서적으로 나아갔다.

구루들의 책에서 느낀점이라면 뭐랄까 상당히 원초적이다라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들을 보여주며 간결하고 확신에 찬 어투로 채워져있는 최신의 책들과는 달리 (책의 표현들을 고대로 가져오자면)영적이고, 내면적이며 좀 더 가슴에 호소하는 듯 했다.

명상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첫명상을 할때 몸이 꼬이고 온갖 잡생각들이 드는것과 같은 맥락일까.
굉장히 오래 붙들고 겨우겨우 읽어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참아가며 한 두권씩 읽다보니,
굉장히 종교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spritual 을 많은 단어들 중 영적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았을까 싶더라.(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겐 호감도가 떨어지는 단어 선택이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나서 이 책을 만났다.
구루들의 구루, #네빌고다드 의 #나는그것이다 (#터닝페이지 출판)
원제인 “I am that I am” 은 성경에서 유례된 것이다.
예수가 모세에게 자신에 대해 이를 때 사용한 구절이다.

자꾸만 확실한 언어로 존재를 증명해주길 바라는 이에게 한 말.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너가 믿고싶어하는(믿으려하는) 그 사람(모습)이다 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네빌 고다드의 <나는 그것이다>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있다.

우리가 되고자하고, 원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안에 있으니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미 되고자하는 목표를 달성한 너의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생생하게 생각할 수록 좋단다.
(한때 유행했던 R=VD 공식이 생각난다. 모든 자기계발서는 일맥상통한다라는 것을 여러권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게 될까? 힘들어 보여,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같은 자기확신이 결여된, 결코 성공한 자기자신을 그리지 못하는, 그런상황에서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세상은 정말로 실패할 이유들을 가져 다 줄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세상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에너지와 작은 성공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예로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한 책인 ‘성경’을 가져오고
작가가 실제로 본 예시와 함께 병렬로 나열하며, ’존재‘,’의식‘,’전제‘가목표달성,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스스로에 대해 선언하는 것이 ’존재‘이다. 그렇게 정의한 존재가 주변을, 환경을 ’정의‘에 맞게 현실로 창조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식’함으로써, ‘무엇을 믿느냐(전제,가정)’함으로써 역시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네빌 고다드는 <나는 그것이다>에서 말하고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성공한 사람들도 태어날 때부터 성공을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면 놀랍게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넘쳐나는 심리학서적에서 관통하는, 우리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말들이 자존감을 가져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라, 자기자신을 믿고 사랑하면 삶이 행복해진다 라는 메세지가 아닌가.

우리 모두가 이러한 내용들을 몰라서 저런 메세지를 전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아 이게 되는거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는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난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의 예시가 예수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예수도 그러했으니 나라고 못할까 라고 생각하기는 쉽지않을 것이다.

많은 심리서적과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면 나와 같은 일반사람들도 이것을 해내고, 삶이 나아지는구나를 깨닫는 것이다.

자기애, 자존감, 성공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결국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이음동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행동하게 할 좀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 ’강력한 무언가‘, 바로 <나는 그것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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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인간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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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공진화. 두가지 이상의 무언가가 함께 진화해 나아간다.
앞서 읽었던 을유문화사의 인간얼굴에서도 얼굴과 뇌, 감각기관들이 함께 진화해 나아갔다. 뇌와 가까이 위치해 즉각적인 감각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 코, 입이 하나의 얼굴에 맞춰졌고 그로인해 쓰임이 많아져 점점 커져가는 뇌를 위한 수용공간을 만들기위해 부리가 줄어들고 두개골 부피가 증가하는 식의.
진화하는 객체는 두개이지만 그 둘의 공진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1+1 이 아니라 제곱에 필적하는 영향력이리라.
저 둘의 공진화로 나머지 부분들도 폭발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뜻이리라.

마찬가지로 #을유문화사 (열일하는 을유 칭찬해👍🏻)가 출판한 ‘인문 건축가’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인간 도 공간과 인간의 공진화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공간인간>에서 말하는 인류의 진화란, 생물학적 진화라기 보다는 사회학적 진화, 즉 문명의 발전에 더 어울리는 개념이다라는게 앞 책에서 언급되는 공진화와의 차이이긴 하지만,

“이 책은 시대별로 진화의 단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했던 건축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가상공간이 중요해진 시대라 하더라도 인류가 화합하여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IT 기술에만 의존할 수 없다. 이 시대에 맞는 건축에서의 공간 혁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격변의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에 주어진 숙제다. 그런 건축 공간의 혁명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건축에서의 위대한 혁명은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꾸어야 한다. 인류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그래 왔기 때문이다.”(P. 390)

<공간인간>에서 유현준 교수가 하고자하는 궁극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구절이다.

또한 내가 사용한 공진화 라는 단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관계’이다.
유현준 교수가 생각하는 건축이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란다. 사람들이 만든 공간은 그 자체로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 관계는 확장되어 건물 내부 사람과 건물 외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새로운 건물로 인해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그 건물에 속해있는 사람과 외부인으로 그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과의 관계가 생겨나고 그로인해 사회적으로 새로운 모습들이 생겨나고 그것으로 사회가 진화하고, 또다시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또다른 관계가 생겨나고 이렇게 계속 건물과 사람은 그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류문화사 라는 이름으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수만년의 인류 역사를 시간,역사,고고학,지리학(지리학도 물리적인 지형을 다루는 분야와 그곳에서 특정 문화나 생활습성이 발생하게된 경위를 분석하여 도시발전이나 문화발전에 이용하는 분야도있다)등 많은 학문들이 등장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분명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술술 재미나게 읽혔다.
명강사들을 초빙하여 다양한 주제로 인문학강의를 해주는 프로그램들을 재미있게 보고 밥친구로도 삼는데 <공간인간>도 그에 필적하는 재미가 있다(물론 책이 더러워지는 것을 엄청! 매우매우매우 싫어해서 현실화 하진 않았다. 이럴때는 전자책이 좋은 것 같기도하다. 큰일이군 텅장을 사수할 수 있기를)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증거로 수사어구 길지않은 담백한 사실만을 다루는 글투로 필요한 이야기만 딱딱 넣어서 잘 읽히고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어떠한 지식을 습득하는데에는 본인이 직접 읽고 생각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이해해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영상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기에는 다 소리로 들려줘서 스스로가 생각하고 정리하고 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서 뇌를 사용하는 시간이 떨어진다고.

아마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이것때문이지 않나싶다. 노벨상도 그렇고 다양한 연유들이 맞물려 MZ들의 독서량이 많이 증가한 요즘이다. 유용하고 재미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을 직접 읽고 머리에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면 <공간인간>이 제격이다.

재미난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적극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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