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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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거장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많은 이들이 알아서 생면부지인 사람들도 애도를 표하기도 해서 떠나는길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외로운것은 위안이 되지만, 그래도 떠나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장이든 아니든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이든 아니든, 나에게 적지않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똑같이 힘든 일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그러했고, 티켓팅까지 성공했으나 공연 취소로 결국 만나지못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 류이치 사카모토 등이 그러하다.
그들의 작품을 좋아했을뿐 개인사를 빠싹하게 알고있지는 않았지만 며칠동안은 참 슬펐었다.

그런 슬픔이 최근 1년에 두번이나 더 있었다.
뉴욕삼부작으로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충격을 준 #폴오스터 와 야매(?)신도 이지만 그래도 내 종교의 대표자 교황 포프 프란치스코님 까지.

믿기지 않게 떠나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게 소식이 들려오지않으면 내가 기억하고 상상하던대로 잘 살고 있겠지 라는 먹연함때문에 생겼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무책임한 막연함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은 더 무책임하게도 아프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이 편안했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돌아볼만큼 너무 갑작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전날인 부활절을 맞이하여
전 인류의 행복을 축언하시고 떠나셨고, 폴 오스터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는 듯한 소설도 안녕을 고했다.

심리치료방법 중에 자기의 괴로웠던 일들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어디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일들을 글로 적어냄으로써 감정을 분출하고 그때의 나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상기하기에 너무나 끔찍하다면 방어기제로 주인공을 자신과 다르게 설정한다고, 성별 나이를 바꾸거나 내가 동쪽에 산다면 글 속 주인공은 서쪽끝에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
올해를 뜨겁게 달구고있는 ‘나의 작은 무법자’또한 작가가 그러한 방법으로 쓴 책이다.

#바움가트너 (#열린책들 출판 #폴오스터 지음)도 일종의 자화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가 자신의 인생을 총 망라하는 글을 쓴다는 설정도 폴 오스터가 <바움 가트너>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땅에서 살아가며 겪은 유년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아내의 사망유무나 시점이 다르긴 하지만/ 폴오스터의 아내는 꾸준히 글을 발표하는 시인이다, 바움 가트너의 아내는 평생을 바쳐 쓴 글이 있으나 발표하지 못했다. 그 글을 읽으며 바움 가트너는 일생을 돌아본다)가 비슷한 인생의 시기를 맞이한 바움 가트너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특별한 소재에서 특별한 감정을 뽑아내던 폴 오스터가 말년의 말년이 되어서 특별하다 할 것 없는 바움 가트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로 적어보니 위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특별하네)

가트너 라는 성이 정원사 라는 뜻이란다.
얼기설기 얽혀서 원래의 모양이 알지못할 정도로 원래의 형태를 잊어버린 나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원래모습으로 생생하게 만드는 것처럼 가트너는 잊고있던 케케묵은 기억들을 다시한번 들춰내서 잃어버렸던 회색빛 삶을 생생한 천연색으로 돌려나간다. 그 힘으로 노년임에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응 시작한다.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폴 오스터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신변을 정리한다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끝을 준비하는게 아니라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얼마남았을지조차 확실하지않은 ‘내일’을 귀하게 여길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라고.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지막을 앞둔 당사자나 그 당사자옆을 지키는 주변인들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소설의 특징은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전지적인 시점으로, 또는 1인칭의 시점으로 기꺼이 경험하게 하고 그로 강한 몰입을,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장르소설의 대표인 가상공간물 같은 느낌이랄까.
캡슐 같은 첨단 과학의 힘을 빌리지않아도 누구나 강력하게 다른이의 삶을 강하게 경험하도록 하는것. 그렇게 내 삶에 다른 삶에서 배운 것을 새기는 것.

그것이 소설이고, 소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폴 오스틴의 <바움 가트너>를 통해 다시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소설은 쓸모없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이던 나를 반성하며. R.I.P.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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