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주완요 지음, 손준식 외 옮김 / 신구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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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완요는 <<대만>>에서 구석기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대만 역사를 다룬다. 원주민의 역사를 대만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시기 설정이다. 서문에 따르면 계엄해제 이전에는 대만 원주민의 역사는 대만의 역사 교과서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이 대만에서 출간된 1997년은 1987년 계엄해제 이후 10년째가 되는 해였다.

빙하기였던 구석기에 원주민이 대만섬으로 이주해왔으며, 여러 차례 발생한 외부 이주민 유입이 그 후 역사적 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대만으로 이주해 왔던 구석기는 자체적으로 발달해 신석기로 나아가지 못한다. 신석기 발전 단계의 외부 이주민이 유입됨으로써 대만섬은 신석기 문명 단계로 나아간다.

일본 지배에 대해 한족과 원주민이 다르게 반응했고, 저항의 패턴과 의미도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근대화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유교 문명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던 한족과 원시 문명 단계에 있던 원주민을 동시에 한 공간에서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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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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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뇌졸중이 발생한 날의 아침부터, 뇌졸중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경험을 쓴다. 1996년 12월 10일 아침 테일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선천적 동정맥 기형으로 왼쪽 대뇌피질에서 출혈이 발생해 좌뇌 기능이 마비된다.

테일러는 좌뇌 기능이 마비되면서 겪었던 혼란을 전적으로 우뇌의 기능하에 놓였던 경험으로 서술한다. 한편 테일러가 묘사하는 우뇌 경험은 명상체험이나 종교체험 같다.

“[59] 좌뇌는 이런 자신을 남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길들여졌다. 이런 제약에서 풀려나자 나의 우뇌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즐거워했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은 우주만큼이나 거대했고, 드넓은 바다에서 흥겹게 장난치며 놀았다.”

테일러의 뇌졸중 수술후 회복 과정도 흥미롭다. 수학 교사였던 어머니의 지도/도움 아래 잘한 것에 대해 기뻐하되, 도전이 되는 과제로 옮겨가며 발전하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과거의 자신의 연설 영상을 보면서 말투과 제스처를 배웠다는 대목도 나온다.

“[147]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저자가 뇌줄중 경험을 계기로 자기 뇌의 작동 방식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때문이다. 뇌졸중에 걸린 뇌과학자가 좌뇌 기능 장애로 인해 우뇌가 우세하게 기능하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구성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특해지는 것이다.

덧 1) 좌뇌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어떻게 상황을 기억할 수 있었는지는 궁금증으로 남는다.
덧 2) 분리뇌 이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질 볼트 테일러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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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
다이애나 애실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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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출판계의 오랜 관행상 편집자는 교정지에서 삭제하려고 했다 되살리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옆에 <그대로 두기>라고 적는다. <<그대로 두기>>는 내가 축적한 경험의 일부를 고스란히 되살리려는 목적에서 선을 보이는 작품이다. “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없어도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그대로 두”고 읽어보면 지워지면 안 될 이야기이다. 작은 이야기들 각각은 재미있고,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과거에 대한 회상의 색조는 유쾌하다.

다이애나 애실은 전후 영국에서 활동한 편집자이다. 전쟁 기간 중 BBC에서 일했으며 전쟁 후에는 안드레 도이치가 세운 출판사에서 출판사가 매각되는 1985년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헝가리 출신의 안드레 도이치는 1945년 앨런 윈게이트를 설립한다. 앨런 윈게이트가 다른 투자자들에게 넘어가게 되자 1952년 독립하여 안드레 도이치를 설립한다.

작가는 1부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 2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쓰고 있지만 1부와 2부 모두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차이가 있다면 1부에서는 출판사에서 책과 관련해서 만난 사람들이 등장하고, 2부에서는 소설가들이 등장한다.

1부에서는 1960년대 아프리카 진출 시도, 1970년대 타임/라이프사에 주식 매각하여 2년간 인수되었던 일, 안드레의 미국 출장 등 영국 출판계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애실은 그 사건들을 아주 오래 전 일어났던 해프닝처럼 다룬다. - 1917년 생인 다이애나 애실이 이 책을 출판한 것이 2000년 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대로 두기>>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과거에 대한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전후 영국의 출판계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에 따라 줄을 세우며 다루는 책은 아니다. 출판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작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뭉치를 통해서 전후 20세기 후반 영국 출판계의 분위기를 짐작해보는 정도이다. (미국 작가, 영국 식민지 출신의 작가, 영국 식민지에서 태어난 영국인 작가가 전후 20세기 후반 영국 출판계에서 중요했던 작가군이었던 것 같다는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

2부에서는 6명의 작가들에 관해 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 출신 인도계 작가 V.S.나이폴과 도미니카 출신 영국인 작가 진 리스 챕터가 재미있었다. 진 리스 챕터에서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진 리스의 행방을 알아낸 사건, 조지 오웰의 부인 소니아 오웰이 진 리스를 후원한 이야기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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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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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게이 소설가의 소설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목이 너무 길어서 파스타 소설이라고 기억해 두었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다는 평을 남긴 걸 보고 게이 소설가의 파스타 소설을 구입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애란을 잠깐 떠올렸다. 다른 리뷰들을 찾아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특히 표제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으며 <침이 고인다>를 떠올렸다. <침이 고인다>는 치사해지는 가난한 청춘을 보여주었고 서글픈 마음이 들게하는 작품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청춘은 좀 더 구체적인 경로를 따라 소진된다. 청춘이 소진되는 방식은 게이 로맨스이다.

화자인 박감독과 왕샤는 모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이 게이 로맨스의 공동 주연이라고 볼 수 있다. 왕샤는 서른다섯이고 현대무용 전공자이며 현재는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백수이다. 박감독은 <잠든 근육청년 탐하기> 한 편을 찍은 삼십대 초반의 무명 감독이다. 자이툰 부대에서 만난 박감독과 왕샤는 벽화제작 분대원이 차린 자이툰 파스타에서 만난 뒤 한동안 연락이 끊긴다. 그리고 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서 주최한 “주목받지 못했던 퀴어 영화 상영회”에서 박감독의 영화가 상영되고, 왕샤가 이 상영회에 참석하면서 두 주인공은 재회한다. 박감독과 왕샤의 로맨스는 샤넬 노래방과 비욘세 순대국밥에서의 소동을 겪으면서 우스꽝스럽고 피곤한 - 횟집에서 나와 오감독을 벤츠S클래스 택시에 태워 강원도 화천으로 실어보내고 미자와 각자의 서러움이 폭발하는 말다툼을 치룬 다음, 왕샤와 박감독은 낯선 신도시에서 노래방을 찾아 오래 걷는다. - ‘무엇’으로 대체된다.

주인공 박감독은 미자가 오감독의 택시비로 준 3만원을 챙겨두었다가 노래방을 가고(+), 한 시간이 모자란 시간에 분노하며 노래방에서 마이크 두 개를 훔쳐달아났다가(+), 결국 발각이 되어 샤넬 노래방 주인에게 카드를 맡겼다가 30만원을 결제하고, 돌려받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27만원이다. 잠시 흑자가 되었다가 이내 더 큰 적자가 되는 하룻밤 사이의 가계부를 보면 삼십대 초반인 두 주인공의 청춘이 소진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로맨스가 아닌 ‘무엇’이 된 로맨스는 끝나버렸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게이 독자/평론가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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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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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인디언 아타바스칸족 내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짧은 소설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펼쳐서 모두 읽고 제시간에 잘 수 있었다.

혹한과 굶주림이 닥치면 약자를 희생시킨다, 는 부족민의 생존전략이다. 전체 집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 - 이 소설에서는 혹한으로 동물들의 이동경로가 바뀌어 유목민의 식량조달에 문제가 발생한다. - 특정 구성원은 다른 다수의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서 집단에서 축출될 수도 있다. 자원 조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는 노인, 아이부터 희생된다.혹한의 시기에 인육을 먹었더라는 얘기도 전설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가까운 시기의 소문으로 남아있다.

두 늙은 여자는 공동체에서 부여 받았던 늙은이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혹한에 살아남는다. 스스로 변화하여 살아남았고, 살아남음으로써 부족민의 생존 전략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족장에게 어떠한 힘든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더이상 노인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두 늙은 여자는 살아남음으로써 공동체의 규칙을 바꾼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 결말에 어떤 교훈이 주어지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식상한 이야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버림받은 늙은 여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이 늙은 여자들 이라서 전설이 소설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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