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 100번 넘어져도 101번 일으켜 세워준 김미경의 말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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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마디는 당신이 움직이기로 결심한 그 순간, 비로소 완성됩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사이다 입담으로 입소문 난 강사 김미경의 강의를 어디에선가 한 번 안본 사람이 있을까? 김미경은 때론 언니처럼, 엄마처럼 다정하면서도 때론 팩트 폭격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넘치는 사람이다. 그녀의 책은 늘 평타 이상은 하는데, 이번 책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에서는 조금 더 따뜻해진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의 '마음 계산법'이라는 꼭지 하나를 소개해 보면,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아시나요?

"제가 진짜 자존심이 세거든요"라고 말할 때와

"나는 자존감이 참 놓아요"라고 말할 때, 마음가짐이 확 달라지는 게 느껴지시나요?

일단, 자존심이 센 사람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마음 계산법이 달라요.

자존심이 센 사람은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동안 상대로부터 받은 호의는 잊고

지금 당장 서운한 감정만 생각해요. 섭섭함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저자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현재의 섭섭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의 서러웠던 사건들을 추가해 섭섭함의 감정을 두 배, 세배 부풀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비록 지금 섭섭한 일을 겪었다 해도 과거에 상대방이 나에게 베푼 것들을 먼저 생각하여 고마움의 계산기를 두드린다. 과거의 고마움을 현재로 가져와 당장의 섭섭함을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자존심이 센 사람은 마음 공간이 너무 작아서 자기 마음만 들어갈 수 있고, 다른 마음이 들어오면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는 반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나보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포용해 함께 나아갈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즉,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마음의 공간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의 공간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나를 온전하게 존중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어진다.

좋은 삶의 기준을 행복에 두는 이들이 태반이지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보다 의미 있는 존재로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에 내 인생을 묶어버리면 행복하지 않을 때의 내 삶은 공허하고 비루해지지만 좋은 삶의 기준을 의미로 규정하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다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된다면 "나 지금 의미 있게 사는 걸까?"라고 자문해 보라고 권한다.

인생의 역경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마다의 아픔이 누구에게나 있는 거지. 저자도 자신의 시련을 유익하게 보내면서 자신을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물이 현재의 그녀를 있게 한 밑거름이자 재테크였다고 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곧 나를 만난다는 거라고. 그 만남이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고, 때로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고통은 다 다르지만, 고통스러운 나날을 어떻게 겪어 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진리이다. 나도 겪어내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을 술 먹으면서 낭비하지 않고, 책에 빠져드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비록 책의 내용이 눈에 담기지 않아도 책장을 넘기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책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힘든 사연은 꼭 내 얘기만 같아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나보다 더한 상황들이 많음에 애써 마음을 달래고 위로받기도 하면서 나의 마음 근육을 단련시켜 왔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위로받은 나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지인들의 고민 상담을 넘어 나의 말로, 나의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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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 없다 - 직장인들의 폭풍 공감 에세이
이종훈 지음, JUNO 그림 / 성안당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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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 없다>는 진짜 책장을 여는 순간 공감 백배에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사이다 같은 책이었다. 회사의 기이한 현상에 대한 꼭지 중 직장인의 법칙에서 십분 공감했다.

하나, 파킨슨의 법칙: 투자한 시간에 관계없이 일은 늘어난다는 법칙

둘, 만유인력의 법칙: 모든 일은 나에게 온다.

셋, 관성의 법칙(직장 제1법칙): 사원일 때 하던 일을 차장이 되어서도 한다. 똑같은 일을 계속한다.

넷, 힘과 가속도의 법칙(직장 제2법칙): 높은 직급, 힘이 센 사람이 시킨 일의 가속도가 붙는다.

다섯, 작용반작용의 법칙(직장 제3 법칙): 담당 부서에 일을 이관하면 다시 돌아온다.

분명 정신없이 해치운 일이 수도 없건만 자꾸만 쌓여가고, 회사에 월급 루팡들도 있는데 내게만 일이 오는 것 같아 짜증도 나고 아래 직원이 해야 할 일을 처리해 줘야 한다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이는 나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이 느끼는 기이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법칙까지 만들어졌겠는가 열 일 하는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언제 그랬냐며 보고를 사장시키는 '사장님'

이런 지랄은 전무한 듣보잡 '전무님'

보고할 때 포장을 기가 막히게 하시는 포장이사 '이사님'

사생활까지 꼬치꼬치 다 캐묻는 부장검사 '부장님'

회식 술자리에서 1차 2차 3차 외쳐 대시는 차차차 '차장님'

나 때는 말이야 과장하는 기교가 뛰어난 '과장님'

대리한테 몰리는 일에 대리를 부를 수 없냐는 '대리님'

불교 사원에서의 템플스테이가 당장 시급한 '사원'

직급별 지랄 컷이라는데 어떰 이렇게 찰떡 비유를 했는지 회사 사람들을 연상시켜보니 딱딱 들어맞아 한참 웃었다. 한편으로는 나는 저런 소리 듣지 않고 싶기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위장을 아프게 하는 곳이 직장이지만, 위장을 채우게 하는 곳도 직장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 고된 업무, 상사의 갑질 등 직장 생활이 고충이 한 둘이 아니어도, 매월 입금되는 급여에 위로받는 게 직장인이다. 설령 월급이 스쳐 지나가 텅 비어 버리는 텅장일지라도 그간의 고생을 위로받는 합의금이자 깽값이라는 사실엔 변함없다.

어느 업계든 직장인의 고충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어떤 회사를 가도 또라이는 꼭 있고, 월급루팡, 여우, 정치인들 또한 다 있다. 개인을 넘어 조직으로 들어가 보면 컴퓨터랑 얘기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전산팀, 일 떠넘기는 기술 뛰어난 기술팀, 매일 돈 없다는 자금팀,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서비스팀, 리스크를 유발하는 리스크 관리팀, 직원 조지는 기획을 하는 기획팀 등등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부서도 비슷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사를 다니고 버텨야 한다. 지금 이 고통을 견디는 이유는 상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다.

 

'퍽유머니'란 말이 유행한다. 퍽유머니(Fuck you money)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 해 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인 1년 치 연봉을 말한다. 상사 면전에 퍽유를 날리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짜릿하다고 한다. 그러나 퍽유머니를 날리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한번 퍽유를 날리면 또다시 1년 후에는 다시 직장에서 그 돈을 모아야 하고, 빈털터리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떠나는 것보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더 값진 것이다. 비록 커피 링거와 소주 수혈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틸지라도 인생은 단거리 주행이 아니기 때문에 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사표 낼 용기보다 남을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 그리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다면 회사에서도 나아가 나의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슈퍼맨도 약점이 있고, 배트맨도 트라우마가 있지만 세상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가. 뭐 비록 판타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내가 더 큰 고통을 겪지 않음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열심히 살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힘들지라도 지금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현대인은 돈을 벌려고 건강을 희생합니다. 그러고는 건강을 되찾으려고 돈을 희생하죠. 그들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합니다. 결국 현재에 살지도 못하고 미래에 살지도 못합니다. 절대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다가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라고 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현대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이러하다. 걱정하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미래의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조금 후회를 덜 하지 않을까.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니까 말이다. 사이다 같은 글들이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읽은 책이었지만, 직장인이라면 위로받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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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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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인 저자는 초반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에게 주어지는 업무, 그리고 편집자가 책을 읽는 시선에 대해 서술한다. 예비 저자가 위해서는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그로 인해 배운 '대중의 필요와 욕구'와 '자신의 강점 콘텐츠를 책에 녹이는 방법'을 바탕으로 책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원고란 저자 개인의 만족을 쓰는 것이 아닌 대중과 함께 소통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대중의 욕구는 곧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권의 책을 구매할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표지'이다. 그래서 출판계 총사자들은 끊임없이 책 표지를 연구한다. 독자의 흥미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책 커버의 이미지, 제목, 부제 등의 카피문구 등 모든 구성요소들에 신경을 쓰는 것 또한 편집자의 몫이다. 출판계에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 그 어느 선배보다 인계를 잘해주는 도서가 아닐까 싶은 '책을 보다'에는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예비저자를 위한 책쓰기 파트, 마지막에는 책 읽기의 핵심을 담아냈다. 두 명의 저자가 집필해서 인지 파트 간의 느낌이 조금은 다르지만, 각 파트별로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충분히 매력있다.

세상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해석이 가능하기에 어렵고 불편한 책도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책 읽는 근육이 생겨 성장할 수 있다. 저자는 독서 근육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단짠단짠 기법'을 소개한다. 단짠단짠 기법이란, '단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혹은 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편안한 책이고 '짠 것'은 구매해 한 두장 읽다가 책장에 꽂아둔 벽돌책이나 심오한 책을 말한다. 무게감이 있는 책을 읽을 때면 평소 좋아하는 책 혹은 저자의 신간들을 몇 권 섞어 읽으면서 마라톤처럼 완주하라는 것이다.

 

나는 책 읽는 재미를 붙이고 책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기 위해 대학생때 '단짠단짠'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책은 끝장을 봐야 한다.'던 애서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을 가까이 하고 다행히 독서 편식이 심하지는 않았으나, 스무살의 나에게는 일본 소설이나 가벼운 책들에 손이 가고 독서의 참맛을 알지는 못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것은 아마도 소설 책 한권과 경영서 한권 등 책을 번갈아 읽어가는 습관이었던 것 같다.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경영서에도 재밌는 책이 얼마든지 있기에 독서력도 차츰 증가하고 학부 과정에서 그리스 철학, 자본론 등을 읽어 내려가며 성장했던 것 같다. 이제는 사회 생활하며 책을 소홀히하다 보니 책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연간 독서량도 줄어 서평을 쓰며 책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독서노트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플래그만 여기저기 붙여놓았지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독서는 책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저자의 '단짠단짠 기법'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공통분모가 아닐까 싶다. 집콕하는 게 가장 안전한 이 때, 저마다의 독서 시간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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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2
헤르만 헤세 지음, 김세나 옮김 / 별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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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 영향으로 14세에 신학자가 되기 위해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마울브론 기숙학교의 생활은 섬세한 그가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신경쇠약증이 발병해 중퇴한다. 그 후 서점에서 일하며 그가 바란 대로 글을 쓰며 안정을 찾는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 그의 유년 시절을 녹여낸 자전소설이다.

한스 기벤라트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유일하게 시험 본 것은 물론 11명을 뽑는 신학 기숙 학교에 한 문제 차이로 2등으로 합격한 촉망받는 인재다. 학교에서 자유분방한 친구 하일너와 친해지며 모범생이던 한스는 인생의 변환점을 맞게 된다. 교육시스템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비판하며 음유시인같이 행동하는 하일너, 친구와의 다툼을 통해 교장선생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한스마저 거리를 두며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나, 한스의 마음은 점점 불편해지고 하일너를 찾아가 사과하고 둘의 관계는 회복한다. 그 뒤로 한스는 자신의 주관보다는 하일너가 하자는 대로 생활하게 된다. 이에 둘의 관계를 떼어 놓으려 교장선생님 마저 나서서 권유하지만 이미 친구를 버렸던 한스는 그게 얼마나 비겁한지 안다며 외면하고 만다. 하일너와의 우정을 지금껏 소홀히 여겼던 것들을 보상해 주는 보물같이 여겼다. 결국 하일너는 학교를 떠나고, 한스는 환영까지 보는 지경에 이르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스에게는 더 이상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우울해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리 변화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어린 소년의 요동치는 감정선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순식간에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즐거움은 한 철이라 했던가. 한스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학교 친구 하일너와 집으로 돌아와 풍요로운 가을날 만난 소녀 에마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 간다. 촉망받던 한스는 이제 어린 시절 친한 친구와 함께 기계공으로 일하며 다른 삶을 시작한다. 친구가 수련공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주급을 받아 술 한잔하러 나가 맛있는 음식과 웃음 가득한 시간을 느끼며 이런 게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집에서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한스를 기다리다 분노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잠에 이기지는 못한다. 같은 시각 아버지에게 그토록 원망을 듣던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조용히 강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어둠 속을 흘러가는 그의 마른 몸을 가을밤이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한스의 시신이 발견되어 집으로 오는데 피로와 외로운 슬픔에 빠진 아버지의 눈에 한스의 시체는 뭔가 특별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운명을 살 권리를 타고난 사람처럼 보였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약간 벌린 입은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저자는 한창 좋은 시절에 갑자기 꺾여 즐거운 인생의 항로를 억지로 벗어난 안타까움을 그려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 지쳐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테니까.' 교장 선생님이 한스의 손을 꼭 붙들며 했던 말인데, 이는 인생이라는 수레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꿈, 사랑, 우정, 권위, 제도, 시험 등의 무게를 감내해야 함을 시사하는 동시에 한스 기벤라트의 운명을 예고한다. 나는 누군가의 수레 위에 무게를 더 하고 있는 건 아닐지 돌아보고, 그 감당하기 어려운 수레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길 바라본다. 고전 문학은 민음사 시리즈를 모아 왔는데 이번에 만난 별글 클래식 에디션은 무게감이나 편집 구성면에서 만족스럽다. 특히 표지가 예뻐서 책장에 시리즈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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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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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1,2>는 지금껏 내가 접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 가장 두꺼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에 역자 김난주의 힘이 더해져서일까. 1000페이지의 분량이 무색하게 금방 술술 익혀져 내려가는 페이지터너 소설이다.

오사카 인근의 니시노미야에 위치한 미즈하라 제작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그 빈소를 지키고 있는 아들 마사야에게 고모부 도시로가 조문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빈소에 찾아온 고모부 도시로는 어머니 생전에 자신이 빌려준 돈이 있다며 차용증을 보이며 생명보험금으로 빚을 갚으라 재촉한다. 다음 날, 갑작스러운 지진이 니시마를 덮쳐 도시 전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다. 미즈하라 제작소도 피해 가지 못했는데, 무너진 공장 잔해에 고모부가 깔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 마사야는 충동적으로 이모부의 이마에 벽돌을 던져 돌이키지 못할 행동을 하고 만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이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신카이 미후유다. 마사야는 언제부터 그녀가 지켜봤는지 알 수 없지만 지진으로 인해 부모님 양친을 여의었다는 그녀와 자꾸 엮이게 된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 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미후유의 말은 설득력이 강했다. 마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피할 수 없는 길로 여겨졌다. 그녀 곁에서 철저히 농락당하고 짓밟히는 한 남자 미즈하라 마하시와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전개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언제나 그렇듯 독자의 호흡이 빨라지게 만든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끝을 알 수 없는 마성에 빠진 남자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의 계획대로 그녀를 목적지로 안내한다.

 

 

그들이 미후유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면 곤경에 빠지게 되거나 그녀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되는 상황 역시 철두철미한 그녀의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정보 발신자가 무엇을 내보내고 싶어 하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한 미후유의 전략이 승리했다. 그저 재능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그녀 안에는 마성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숨어 있고, 그것이 그녀의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미처 모르는 채 거기에 손을 대려고 하면 바로 그녀의 술수에 휘말리고 만다.

 

 

2004년 연재된 소설이라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일본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그리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의 살풍경들이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아리따운 외모의 이면에 숨겨진 미후유의 끝 모를 욕망은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 소름 끼치도록 주도면밀한 그녀의 삶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지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인간은 누구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것도 만인이 은밀하게 품고 있는 꿈이 아닐까." 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저마다 품은 은밀한 꿈은 무엇일까란 의문이 생긴다.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환야1,2>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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