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2
헤르만 헤세 지음, 김세나 옮김 / 별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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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 영향으로 14세에 신학자가 되기 위해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마울브론 기숙학교의 생활은 섬세한 그가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신경쇠약증이 발병해 중퇴한다. 그 후 서점에서 일하며 그가 바란 대로 글을 쓰며 안정을 찾는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통해 그의 유년 시절을 녹여낸 자전소설이다.

한스 기벤라트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유일하게 시험 본 것은 물론 11명을 뽑는 신학 기숙 학교에 한 문제 차이로 2등으로 합격한 촉망받는 인재다. 학교에서 자유분방한 친구 하일너와 친해지며 모범생이던 한스는 인생의 변환점을 맞게 된다. 교육시스템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비판하며 음유시인같이 행동하는 하일너, 친구와의 다툼을 통해 교장선생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한스마저 거리를 두며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나, 한스의 마음은 점점 불편해지고 하일너를 찾아가 사과하고 둘의 관계는 회복한다. 그 뒤로 한스는 자신의 주관보다는 하일너가 하자는 대로 생활하게 된다. 이에 둘의 관계를 떼어 놓으려 교장선생님 마저 나서서 권유하지만 이미 친구를 버렸던 한스는 그게 얼마나 비겁한지 안다며 외면하고 만다. 하일너와의 우정을 지금껏 소홀히 여겼던 것들을 보상해 주는 보물같이 여겼다. 결국 하일너는 학교를 떠나고, 한스는 환영까지 보는 지경에 이르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스에게는 더 이상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우울해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리 변화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어린 소년의 요동치는 감정선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순식간에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즐거움은 한 철이라 했던가. 한스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학교 친구 하일너와 집으로 돌아와 풍요로운 가을날 만난 소녀 에마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 간다. 촉망받던 한스는 이제 어린 시절 친한 친구와 함께 기계공으로 일하며 다른 삶을 시작한다. 친구가 수련공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주급을 받아 술 한잔하러 나가 맛있는 음식과 웃음 가득한 시간을 느끼며 이런 게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집에서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한스를 기다리다 분노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잠에 이기지는 못한다. 같은 시각 아버지에게 그토록 원망을 듣던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조용히 강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어둠 속을 흘러가는 그의 마른 몸을 가을밤이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한스의 시신이 발견되어 집으로 오는데 피로와 외로운 슬픔에 빠진 아버지의 눈에 한스의 시체는 뭔가 특별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운명을 살 권리를 타고난 사람처럼 보였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약간 벌린 입은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저자는 한창 좋은 시절에 갑자기 꺾여 즐거운 인생의 항로를 억지로 벗어난 안타까움을 그려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 지쳐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테니까.' 교장 선생님이 한스의 손을 꼭 붙들며 했던 말인데, 이는 인생이라는 수레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꿈, 사랑, 우정, 권위, 제도, 시험 등의 무게를 감내해야 함을 시사하는 동시에 한스 기벤라트의 운명을 예고한다. 나는 누군가의 수레 위에 무게를 더 하고 있는 건 아닐지 돌아보고, 그 감당하기 어려운 수레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길 바라본다. 고전 문학은 민음사 시리즈를 모아 왔는데 이번에 만난 별글 클래식 에디션은 무게감이나 편집 구성면에서 만족스럽다. 특히 표지가 예뻐서 책장에 시리즈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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