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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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1,2>는 지금껏 내가 접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 가장 두꺼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에 역자 김난주의 힘이 더해져서일까. 1000페이지의 분량이 무색하게 금방 술술 익혀져 내려가는 페이지터너 소설이다.

오사카 인근의 니시노미야에 위치한 미즈하라 제작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그 빈소를 지키고 있는 아들 마사야에게 고모부 도시로가 조문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빈소에 찾아온 고모부 도시로는 어머니 생전에 자신이 빌려준 돈이 있다며 차용증을 보이며 생명보험금으로 빚을 갚으라 재촉한다. 다음 날, 갑작스러운 지진이 니시마를 덮쳐 도시 전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다. 미즈하라 제작소도 피해 가지 못했는데, 무너진 공장 잔해에 고모부가 깔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 마사야는 충동적으로 이모부의 이마에 벽돌을 던져 돌이키지 못할 행동을 하고 만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이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신카이 미후유다. 마사야는 언제부터 그녀가 지켜봤는지 알 수 없지만 지진으로 인해 부모님 양친을 여의었다는 그녀와 자꾸 엮이게 된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 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미후유의 말은 설득력이 강했다. 마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피할 수 없는 길로 여겨졌다. 그녀 곁에서 철저히 농락당하고 짓밟히는 한 남자 미즈하라 마하시와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전개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언제나 그렇듯 독자의 호흡이 빨라지게 만든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끝을 알 수 없는 마성에 빠진 남자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의 계획대로 그녀를 목적지로 안내한다.

 

 

그들이 미후유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면 곤경에 빠지게 되거나 그녀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되는 상황 역시 철두철미한 그녀의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정보 발신자가 무엇을 내보내고 싶어 하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한 미후유의 전략이 승리했다. 그저 재능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그녀 안에는 마성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숨어 있고, 그것이 그녀의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미처 모르는 채 거기에 손을 대려고 하면 바로 그녀의 술수에 휘말리고 만다.

 

 

2004년 연재된 소설이라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일본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그리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의 살풍경들이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아리따운 외모의 이면에 숨겨진 미후유의 끝 모를 욕망은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 소름 끼치도록 주도면밀한 그녀의 삶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지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인간은 누구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것도 만인이 은밀하게 품고 있는 꿈이 아닐까." 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저마다 품은 은밀한 꿈은 무엇일까란 의문이 생긴다.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환야1,2>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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