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티사르의 자동차 - 현대 예멘 여성의 초상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페드로 리에라 지음, 나초 카사노바 그림, 엄지영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10 






 실화가 가진 압도적인 힘이 있어 두 번째 접함에도 압도당하며 읽었다. 예맨에 일 때문에 가본 경험이 있는 스페인 만화가의 작품으로 예맨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낱낱이 드러낸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창작이 아닌 '어느 예맨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그래픽 노블'의 특성에 따라 그림보다 문장을 따라가며 읽는 맛이 상당했던 작품이다. 예전에 읽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문장력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아무리 그래픽 노블이라지만 엄연히 만화에 속하는 작품에 문장력에 감탄해보긴 처음이었다. 다시 곱씹어볼 만한 문장은 이번에 읽을 땐 없었지만 워낙에 작품의 분위기가 분위기인 지라 그냥 작품 자체가 뛰어난 문장처럼 읽혔다. 

 처음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어느 예맨 여성'은 예맨의 문제는 종교가 아닌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관습과 전통'이라는 종교가 문제임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슬람교는 거들 뿐이란 것이다. 여담이지만 쿠란의 구절을 쓴 무함마드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쿠란을 쓸 당시와 지금 시대를 동일시할 순 없으니 어느 정도는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인 마음가짐과 환경에서 그 구절들을 적은 것이겠지만, 후대의 이슬람교와 관련된 문제들은 그 쿠란을 교묘하게 자기들 입맛대로 오독한 것에서 비롯되니 이슬람교 전체를 싸잡아 욕하기도 뭔가 애매하단 생각도 든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작품의 주인공 인티사르부터가 샤를리 엡도의 풍자 만화를 바보같다며 비판하는 등 딱히 이슬람교도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눈치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인티사르는 예맨이란 나라의 막장스러움, 자신의 아버지는 틈이 날 때마다 씹지만 이슬람교를 근본적으로 혐오하는 장면은 없었다. 아주 나쁘게 말하면 세뇌당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 이슬람교를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입장인 나 같은 독자는 실제 그 종교를 믿으며 본인 나라에서 특정 성별로 살아감에 있어 어떤 기막힌 고충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게 그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감정을 격해지지 않게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동양권과는 비교가 불허한 여권의 후진성이 작품 전반에 걸쳐 여과 없이 묘사됐다. 사실 동양이라고 어디 가서 여권 신장이 잘 이뤄졌다고 할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예맨 같은 나라랑 비교했을 때 뭐든 위엔 더 위가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신을 가리는 니캅을 시작으로 흡연하는 여성을 바로 창녀 취급하거나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진학과 취업과 결혼이 당사자의 의지완 상관없이 결정되고 번복따윈 용납하지 않는 것, 여성 혼자선 담배 한 갑 구매할 수 없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이래저래 도가 지나쳐 일일이 언급하며 화를 내는 게 입 아프고 열불나는 사례가 줄지어 소개된다. 


 그래도 이 작품을 결말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주인공 인티사르일 것이다. 사회 분위기상 여성 혼자서 운전을 하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상황에서 퇴근할 때 도로에서 자신의 자동차로 스릴 넘치는 드라이브를 펼치는 도입부는 제법 흥미로웠다. 고작 여성이 운전하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며 달려드는 남성 운전자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을 대처하는 인티사르의 대범함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의미에서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상당한 자산가의 자제이고 또 그 꼰대 아버지를 상대로 학업이나 취업처럼 중대한 문제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던 인티사르였기에 느닷없는 광란의 레이스따윈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티사르의 상황이 그나마 나은 건 그녀의 성격 덕분이 크지만 이런 성격조차 바로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아버지의 재력에서 어느 정도 비롯됐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티사르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작중 묘사에 따르면 예맨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약이 많고 나라 자체가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에선 가장의 재력이 곧 그 집안 인물들의 정체성을 살펴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임엔 분명하다. 즉 인티사르의 비극은 그나마 다른 예맨 여성에 비해 가방끈도 길고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버지 덕분이란 걸 본인이 결코 모르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데... 이는 굳이 예맨이 아니라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그늘에 사는 자식이라면 다 공감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여겨졌다. 내가 이 책을 5년 전에 읽을 때와 다르게 인티사르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론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정적으로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변화긴 한데 참 씁쓸하구만. 


 따지고 보니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인 인티사르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아버지의 덕도 있다는 결론이 나와 책이 전에 없이 씁쓸한 뒷맛을 안겼다. 하지만 반대로 결말을 다다르니 씁쓸함이 아닌 감동이 밀려왔다. 낡아빠지긴 했어도 애지중지 타고 다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아버지에 의해 이복 남동생의 운전 연습용으로 넘겨졌을 때 인티사르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인 친남동생과 함께 자동차를 몰래 태워버린다. 제아무리 낡아빠졌어도 남이 망치느니 자기가 끝을 내는 게 맞다며 눈물을 머금고 태워버린 것이다. 물건의 제값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의 소유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과 그 물건을 빼앗기느니 과감히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는 행동이 참으로 주체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록 인티사르의 자동차든 주체적인 성격이든 아버지의 제력에서 비롯된것일지언정 어쨌든 인티사르의 것이기도 하며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계속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뒷받침된다면 아버지나 다른 남성의 방해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그녀에게 어떻게든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너무 낙관적인 생각은 당사자 입장에선 역겨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허나, 이 작품의 제목에 다른 무엇도 아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들어간다는 것에서 인티사르가 마지막에 자동차를 대한 태도에서 인생의 활로를 개척할 만한 약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기에 저 낙관적인 생각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때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면서 얻게 되는 자존감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 자존감을 얻고 지켜나간다면, 어쩌면 답이 없어 보이는 삶이 실마리를 얻은 듯 유려하게 흘러갈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 작품이 마지막까지 씁쓸하게 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난 내 낙관적인 해석에 더욱 애착이 간다. 반면교사를 삼긴 좀 그렇지만, 예맨처럼 힘겨운 나라에서 저런 결말의 이야기를 접하니 다가올 새해가 전보다 밝게 느껴졌다. 이 기운이 부디 오래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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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ㅣ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9.4 






 읽기 전엔 런던 유명 미술관들의 대표작을 소개해주는 평범한 미술 서적인 줄 알았다. 물론 런던 미술관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기에 펼친 책인 만큼 제아무리 평범하더라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고서 정말이지 본문의 내용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저자는 런던의 유명 미술관들만이 아닌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역사적으로, 또는 미술을 전공한 저자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미술관도 몇 곳 다뤘음을 서문에서 밝혔다. 일단 그 점이 흥미로웠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지 그 미술관의 대표작이 아닌 런던이나 영국 전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위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즉 유명하더라도 예컨대 고흐나 얀 반 에이크, 벨라스케스의 그림처럼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그림이더라도 영국 역사와 무관한 내용의 작품이라면 뒤에 '이외에 꼭 보아야 할 그림'으로 간략히 정리해놓은 것이 제법 신박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메이드 인 영국'은 건물과 경비원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오로지 영국 작가의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우는 게 가능한가? 오죽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일 적에 여러 나라에서 하도 많이 훔친 나머지 양심에 찔려 입장료를 안 받는다고 수군거릴 정도니 정말 말 다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농담은 농담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영국의 화가라고 하면 기껏해야 터너밖에 떠오르지 않아 저자의 서문이 흥미로우면서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노르웨이에 여행갔을 때 그 나라에 뭉크를 제외하고도 정말 멋진 화가가 많다는 걸 알았으니 영국에도 꼭 터너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화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꼭 세계적으로 유명해야 멋지고 훌륭한 화가인 것은 아니니까... 


 이 책을 읽고 언젠가 런던을 방문한다면 이 그림들은 꼭 봐야지 하고 구체적인 리스트가 머릿속에 작성됐다. 대표적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선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비, 증기, 속도>, 모네의 <웨스트민스터 하구에서 본 템스 강>, 르누아르의 <우산>을, 코톨드 갤러리에선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루소의 <톨게이트>가, 테이트 브리튼에선 윌리엄 홀맨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을, 조지프 라이트의 <대장간>, 터너의 <노엄 성의 일출> 등이 보고 싶었다. 개중엔 런던이나 영국과 크게 상관없는 작품도 있고 그저 좋아하는 화가의 대표작이거나 아니면 저자가 소개한 작품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보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나 테이트 모던에서 작가가 소개한 작품 중엔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될 것이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경우엔 소개되는 그림들이 전부 영국의 위인이다 보니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가장 이질적이면서 어떤 의미에선 가장 흥미로웠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듯한 그 이질감 때문에 순수하게 그림으로서 끌리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반대로 테이트 모던은 폐공장을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하며 개인적으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지만 현대 미술의 특성상 난해하고 기괴한 그림이 많고 - 특히 베이컨의 작품이 그렇다. - 작가가 소개한 작품들 중 영국 문화나 역사를 대변하는 작품이 없어서 읽는 동안 그 이상의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이 미술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런던의 도시 계획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간혹 예산을 감축한 탓에 임기응변으로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 크게 각광받는 케이스가 참 많은 것 같다. 정말 인간 만사 새옹지마랄까. 


 생각보다 소개된 작품의 수도 많았지만 저자가 너무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서 좋았고 영국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맥락 파악에 문제 없었던 것이나, 또 너무 자전적인 이야기에 빠진 나머지 글이 감상적으로 흐르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않은 것도 이 책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테크닉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설명하기보다 저자 자신의 눈으로 정성스럽게 관찰한 결과를 들려주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 어투 덕분에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자칫 지루하고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은 그림들의 이야기가 꽤 재밌게 스며들었다. 

 아까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집필 방침이며 그 예시로 든 두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었다고 말했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위에서 런던에 가서 보고 싶은 그림들 중엔 저자가 소개해주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도 많다. 가령 산업혁명을 최초로 화폭에 담은 화가인 조지프 라이트의 이야기나 모네가 런던에 잠시 살았었다는 사실, <제인 그레이의 처형> 속 비극적인 역사는 나처럼 역사나 미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따로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낯선 이야기인 터라 저자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잠시나마 지적 욕구 및 갈증이 적잖이 해소됐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아는 만큼 보이긴 하지만 모르더라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결국 이 책을 쓴 저자도 처음부터 완벽히 모든 이야길 알고서 집필에 임한 것이 아닌 집필하는 도중에도 미술관에 몇 번씩 들러 이야길 풍성하게 만든 것에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저자가 미술관에 몇 번씩 들르는 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나 개인적인 감상, 그림의 배경을 공부한 뒤에 달라진 인상 등을 들려주니 작품들을 직관하지 않았음에도 간접적으로나마 감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처럼 인쇄물이 풍족해진 세상에선 책에 수록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간접 체험을 하는 느낌은 받기 쉽지 않은데 저자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말 미술관을 사랑하는 작가라 그럴까, 그림을 살펴보는 자세나 열정 등 참 본받아 마땅한 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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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 상
미우라 시온 원작, 쿠모타 하루코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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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라고만 이 작품을 소개하면 솔직히 별로 재밌어 보이진 않을 것이다. 원작 소설가가 미우라 시온이며 원작이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인기에 힘입어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얘기까지 들어도 사전 만드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까 싶을 것이다. 내 경우엔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쓸 때도 사전을 꽤 많이 참고하는 터라 사전 자체가 익숙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어쩌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잡지 않은 책이 사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밖에. 내 나름대로 사전을 많이 본다고 한 나도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리 재밌을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배를 엮다>는 '대도해'라는 이름의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13년 간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전의 이름은 말의 바다를 나아가는 배이며 작품의 제목은 배라는 이름의 사전을 엮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행복한 사전'이었는데, 그 제목도 아주 관련이 없는 제목이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원제가 훨씬 낫다고 본다. 물론 '배를 엮다'라는 말이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보니 이해는 하지만. 아무튼 넘쳐나는 말의 홍수 속에서, 또 내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단어여도 막상 사전적 정의를 말하라고 하면 입이 잘 벌리지 않는 언어의 어려움 속에서 묵묵히 시간을 다해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간혹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또는 회사의 재정 문제 때문에 사전 제작 자체가 엎어질 위기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잘 수습해 결국 사전 출간에 이르게 된다. 


 13년이라니, 객관적으로는 참 길고도 긴 시간이지만 원래 정성을 다한 책은 그만큼 시간이 드는 법이다. 대체로 소설도 따지고 보면 10년이 넘게 구상되고 집필된 작품이 아주 많다. 특히나 사전은 치우치지 않은 언어의 정확한 풀이를 살펴보는 책이므로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들이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사전 만들기의 전문성, 언어를 어떻게 풀이해야 하며 사전엔 어떤 종이가 적합하며 어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제법 디테일하게 소개된다. 요즘엔 사전을 인터넷 사전만 보거나 영어 사전만 보는데 작품을 읽다 보니 종이로 된 사전을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다. 비단 이 작품 속 캐릭터들 못지않게 우리나라에서 사전을 만든 사람들도 적잖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냈을 테니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지식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란 점에서 고매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난 이 작품을 영화로 먼저 접했고 원작 소설도 읽었고 만화로 세 번째로 접하게 됐다. 만화가 영화나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인물의 감정 표현이나 묘사가 조금 더 발랄하고 적극적이며 알기 쉽다는 것이다. 이 점 덕분에 주인공 마지메와 카구야의 연애 이야기보다 만화에선 니시오카의 열등감이 더 흥미롭게 묘사됐다. 어떻게 보면 니시오카의 열등감이 작품 전체에 걸쳐 중요하기 그지없는 부분인 지라 만화의 연출이 실로 적합했다고 여겨졌다. 보통 마지메처럼 사교성 떨어지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의 경우 그들의 성실함과 전문성을 높여주며 그와 다른 사교성 높은 사람들, 소위 말하는 인싸에 속하는 사람들을 두고 경박하다면서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반대로 그렇게 홀대를 당하는 인싸가, 아니면 정말로 내실 없게 살거나 그렇게 산다고 푸념하는 인싸가 화려하지 않은 삶이어도 내실 있게 사는 마지메 같은 캐릭터에게 형용하기 힘든 열등감을 품는 대목이 - 그런 와중에도 둘 사이에 아주 바람직한 우정이 형성된다는 것도 - 신선하면서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싶어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을 통해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 언어의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길 접할 수 있던 것도 좋지만, 그저 자기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과 끈기, 이른바 장인 정신의 가치란 것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애정이 갔다. 캐릭터들이며 소재며 이래저래 사랑스러운 작품이지만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라는 자칫 생소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길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고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장인의 이야기란 대체로 그런 법인가? 작품의 결말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내심 이 만화를 읽기 전엔 과연 원작 소설의 내용이 만화로도 2차 창작될 만한 내용이었나 싶었지만 읽는 동안 만화가 더 편한 독자들에게도 <배를 엮다>의 내용을 전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며 역시 괜히 만화로 나온 게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까지 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장르로 치환되더라도 재밌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원작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을 둔 다음에 소설이랑 영화도 다시 볼 생각이다. 내용이 가물가물해진 다음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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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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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내 모든 여행은 배낭에 넣어갈 책을 고르는 일로 시작한다" 라는 문장만으로 읽을 수밖에 없던 책이다. 총 25권의 책과 그와 관련된 여행 이야길 풀어낸 이 책은 읽는 동안 정작 본문의 내용에 감탄한 적보다 내 지난 여행들을 추억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작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일부 에세이를 제외하곤 대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장황하거나 혹은 소개되고 있는 책을 내가 읽질 않은 탓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읽었던 책이라고 이 작가가 아주 맛깔나게 소개해줬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페르세폴리스>, <카탈로니아 찬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소개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해 작가가 풀어낸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 <페르세폴리스> 빼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들인데 언젠가 읽어볼 생각이다. 그 책들을 읽고 이 에세이들만 따로 읽어도 좋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독서량보단 이 작가가 직접 가본 여행지들에 더 감탄했다. 보통 이란이나 부탄, 몽골, 아마존 같은 곳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볼 순 있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여자 혼자 몸으로. 아니나 다를까 여성이란 이유로 모종의 신변 위협을 느낀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보단 에세이엔 여행지와 책과의 연결 고리나 복합적인 감상에 대한 기록이 우선으로 적혀있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정말 대단한 역마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었다고 그 배경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지만... 솔직히 말해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지 걱정보다 부러움이 훨씬 앞섰다. 역시 여행은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갔던 여행 중 책과 관련된 여행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도련님>의 마츠야마, <신참자>의 도쿄, <레몬>의 하코다테, <침묵>의 나가사키, <말레이 철도의 비밀>의 말레이시아, 그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의 노르웨이... 되돌아보니 나도 적잖은 성지순례를 실천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정말 하나같이 소중한 여행들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가령 <내 이름은 망고>의 캄보디아나 <박쥐>의 호주,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웨덴, '에를렌뒤르' 시리즈의 아이슬란드, <과테말라의 염소들>의 과테말라, <차일드44>와 <모스크바의 신사>의 모스크바, <13.7>의 홍콩, <남쪽으로 튀어!>의 이리오모테섬, <푸른 불꽃>의 가마쿠라, <보틀넥>의 가나자와,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 대부분의 작품의 무대인 센다이는 내 버킷 리스트에 있는 여행지들이다. 특히 스웨덴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작년 3월에 여행갈 뻔했기에, 홍콩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국제적인 상황 때문에 가기 힘들어져 더욱 아쉽다. 언젠가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는지... 

 여행할 때만큼 책이 잘 읽히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여행 가방을 쌀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은 단연 책이다. 재미의 여부나 두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여행지와 어울릴 만한 책을 들고 가려고 한다. 꼭 그 여행지가 배경인 소설일 필요는 없다. 내가 나가사키에 갈 때 나가사키가 고향인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들고 간 것처럼, 삿포로 여행을 갈 때 <맥주별장의 모험>을 들고 간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책을 가져가려고 한다. 여행까지 가서 무슨 책이냐 싶겠지만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도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카페나 느리게 가는 기차, 잠들기 전 숙소에서 얼마든지 짬을 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여행지의 지명이 책 속에서 언급되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반가움을 느끼는 동시에 내가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한 잘 설명하기 힘든 고양감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책의 배경 속 도시로 여행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내 스스로 엄청난 팬임을 자처하는 작품일수록 실제 배경을 내 두 발로 걷는 것만큼 쾌감 넘치는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성지순례란 대체 무엇일까? 단지 그 장소를 걷는 일로만 여기는 건 약간 부족한 설명인 듯하다. 내가 봤을 때 성지순례란 책 속의 배경으로 내가 실제로 걸어가는 것, 어떻게 보면 책과 나를 동일시하는 일이다. 한편으론 책 속의 무대가 실존하는 장소란 걸 확인하려는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크다. 실제 장소를 거닐다 보면 작품의 분위기가 온몸으로 스며들 때도 있고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적이란 거의 없다. 오히려 현실은 이렇구나 하면서 나만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므로 결과적으로 나쁜 여행이라 느낀 여행은 없었다. 

 반대로 그 여행지가 너무 감명 깊은 나머지 관련 책을 더 찾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히로시마나 뉴욕이 그랬다. 여행은 걸어서 읽는 책이고 책은 눈으로 하는 여행이랬나? 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여행과 책, 도저히 한쪽을 따로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당장 이 책 <여행할 땐, 책>만 하더라도 읽으면서 리스본이나 모스크바, 바르셀로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이 더욱 가고 싶어졌다. 여행 다큐멘터리를 봐도 여행 욕구가 샘솟지만 글로 샘솟게 되는 여행 욕구는 정말 남다는 구석이 있다. 내가 머릿속으로 구성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을 직접 경험하고 주변에 떠들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나는 단지 부러워서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누가 누굴 보고 장황하다느니 잘 와 닿지 않는다느니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교하려니 쑥스럽지만 책과 여행을 연결 지어서 글을 쓰려니 필요 이상으로 감상에 젖게 돼 참으로 쉽지 않다는 걸 방금 확실히 깨달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진 이런 생각이 안 들었지만 여행과 책에 대한 에세이를 25편 쓴 작가를 존경하게 됐다. 최소 25번은 넘게 여행한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존경하게 됐고. 지금은 시국 때문에 국내 한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과연 나도 이 작가에 필적할 만큼 여행으로 점철된 삶을, 여행에 살고 여행에 죽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감히 그 인생 못지않게 살아내고 싶단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내 안의 여행 욕구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던 독서는 또 없었던 것 같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시국 이후에 나온 책도 있던데, 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과연 그 작가는 이 시국에 어떤 감상을 할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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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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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오징어 게임>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사람은 서로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고선 기댈 대가 없으니까 믿는 거라고. 한편 이 소설 <까마귀의 엄지>에선 사기는 신사의 범죄라고 궤변이 나오다가 막판에 사기꾼은 인간쓰레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결론의 근거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엔터테인먼트에 치우친 작품치고 참으로 날카로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까마귀의 엄지>는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밝고 유쾌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 강하고 작위적인 측면이 적잖은 작품이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대표작이기도 한데, 이 상이 이름에 비해 그다지 추리소설 같지 않은 작품도 수상이 되는 반면 <까마귀의 엄지>는 반전과 복선이 탁월한 추리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마술과도 같은 성격의 트릭이 작품 전반에 녹아든 동시에 인간애까지 겸비된 나머지 여운이 생각 이상으로 짙게 작렬하는 수작이다. 솔직히 이 반전이 없었다면 너무 그림으로 그린 듯한 힐링 일색의 소동극에 그치고 말았을 텐데, 급조된 반전이 아닌 철저히 계획된 반전이었던 터라 기분 좋게 속고 말았다고 감탄했다. 작위적인 부분까지 계산한 트릭은 신박하기 그지없었다. 덤으로 사기꾼과 조류와 손가락에 대한 메타포가 앞뒤 맞게 나열하며 주제의식을 강조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트릭보다 이렇게 내실을 더하는 게 더 까다롭다고도 보는데 작가가 너무 물 흐르는 듯 유려하게 풀어내 최후반부에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난 이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크로즈 썸>도 올해 초에 봤다. 사실상 세 번째 접하는 셈이라 물릴 만도 했고 확실히 후반부 이전까진 뒤에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면서도 지루하게 읽히긴 했다. 아무튼,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은 초반도 아니고 결말도 아닌 후반부의 알바트로스 작전의 내용이다. 여기서 사기꾼들이 쓰는 수법의 시나리오는 똑같지만 이들이 맞게 된 결말이 디테일하게 다르다. 영화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성격을 가졌다면 소설은 정반대로 작전이 좌절됐음에도 기분은 후련해졌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연출이 훨씬 좋고 세련됐다고 본다. 이후 과거에 얽매인 타케와 인생이 망가진 자매가 화해하는 전개는 똑같지만 소설의 연출이 보다 인간애가 강조됐고 무엇보다 사기라는 범죄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이 느껴져 영화의 각색이 생각할수록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대로 촬영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사기꾼은 인간쓰레기다' 라는 어떤 캐릭터의 대사가 묘하게 작품 내용과 겉돈다고 생각했었다. 선의의 빅 픽처로 인해 어두운 과거로부터 해방된다는 트릭의 강렬함에 현혹돼 정작 그 직전의 알바트로스 작전에서 주인공 타케가 얻은 교훈을 잊고 있었던 탓이다. 사기는 반드시 성공할 수도 없고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사람의 믿음을 갖고 논 자는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정말로 어지간한 상황 - 이 작품의 내용에 따르면 복수나 용서는 예외로 쳐도 될 듯하다. - 이 아닌 이상 사기는 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남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그 교훈을 말이다. 


 영화를 볼 때까진 이 작품이 선의의 사기로 인해 인생을 구원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시 읽으니 선의가 없는 사기처럼 쓰레기 같은 행위도 없다는 작가 나름대로의 비판이 구현된 작품처럼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사기를 중심 소재로 다룬 이상 사기의 위험성에 대해 한 번은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이 사기라는 소재를 다룬 소설의 본분일 것이다. 작품은 시종 유쾌하게 진행되느라 그 본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사기꾼이라 주인공의 사기가 성공하느냐 여부가 궁금한 터라 비판이 끼어들 여지가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반전과 반전이 담은 주제의식 덕분에 예상치 못한 깨달음, 사기라는 행위의 위험성을 독특하게 전달해 이래저래 예상을 상회해 만족감이 배로 들었다. 

 제아무리 선의든 뭐든, 속는 사람이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사기는 위험한 범죄라는 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작가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쓰레기 행위라고 하지만 그렇기엔 작중의 거대한 사기가 낳은 선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효과적이라 그보단 위험하다고 표현을 바꾸고 싶다. 정말 작정하고 사기를 치면 당하는 사람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또 어찌 됐든 간에 인생이 바뀌기에 애당초 남을 속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가볍게 여기기엔 대단히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추리소설도 마술이나 사기처럼 사람을 속이기 위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간혹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해 속여버리는 작품을 접했을 때 느낀 당혹감이 떠올라 사기는 위험하다는 발언이 그리 과장된 말이 아니겠단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물론 사기와 추리소설을 동급으로 쳐선 안 되겠지만. 그 안에 담긴 목적이 매우 판이하니까 말이다. <까마귀의 엄지>는 어떠냐고? <까마귀의 엄지>는 한없이 선한 목적으로 집필된 수작 추리소설이다. 

하얀 마음보다는 넓은 마음이 좀 더 낫겠죠.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예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입니다. - 373~3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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