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8.6






  저번에 시코쿠 섬의 마츠야마로 여행 갔을 때 읽을 책을 2권 가져갔다. 아무래도 5박 6일 동안 가다 보니 200쪽도 겨우 되는 <도련님>만 가져가기엔 약간 불안한 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위키에서 <해변의 카프카>에서 마츠야마가 나온다고 써있는 걸 보고서 상권만 들고 가 읽었다. 근데 마츠야마는 안 나오고 다카마츠... 내가 놓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작품의 주요 배경은 다카마츠라서 마츠야마에 들고 갈 책으로써 잘못 짚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긴 하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안 가져갔더라면 이시모치 아사미의 <물의 미궁>을 들고 갔을지 모르겠다. 그 작가가 에히메 현 출신이거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두 번째로 읽었다. 군대에 있을 때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빼면 읽은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인기 있는 일본 작가이면서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해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지만 이래저래 말도 많은 작간데 이제야 장편소설을 처음 읽었다. 우리 교수님 중 한 분은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못을 박았던데 왜 그러셨는지 알 것도 같다. 솔직히 별로 좋아하는 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리가 아주 없는 얘긴 또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란 점에 초점을 맞추고 읽은 건 절대 아니지만, 처음 몇 장 읽었을 때 그만 읽을까 고민될 만큼 읽기 힘들었다. 문체가 꽤 특색이 있는 편인데 철학적 멋짐을 의식한 듯 처음부터 쉴 틈 없이 이어지니 별로였던 것이다. 대안이 있었다면 다른 책으로 눈길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계속 붙들고 있다보니 나름 궁금증이 일어서 계속 읽어나갔다. 솔직히 가출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관심 밖이었고 지능에 장애가 있지만 고양이와 대활 나눌 수 있는 노인 나카타의 파트만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연관성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어떤 접점이 있어 병렬식으로 진행되는지 작가의 의중이 궁금해 하는 수 없이 끝까지 읽기로 했다.

  읽히기는 쉽게 읽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언한 것처럼 확실히 난해한 내용이었다. 난해함에도 머릴 싸매는 한이 있어도 나름의 답을 내고 싶은 유형이 있고 답이 어떻든 어찌 되든 딱히 상관 없는 유형도 있는데 이 작품의 난해함은 후자에 더 가깝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욕은 아니다. 물론 입장을 확실하게 말하라고 하면 불만스럽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매력이 있는 난해함이란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아버지가 뱉은 저주 어린 운명 때문에 가출로써 답을 내고 싶은 카프카, 기구하게 살아가다가 기묘한 모험의 길을 떠나게 된 나카타, 그리고 둘이 각자의 여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 각각의 캐릭터들이 품은 상징을 다 깊게 생각했다간 꽤나 골치 아플 것이다. 이게 할 말인가 싶지만, 딱히 메타포를 의식하지 않아도 작가의 골 때리고 밑도 끝도 없는 상상 덕분에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또 여운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 수준에 비해 어째 성의가 부족한 글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명색이 카프카의 고국 체코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라지만 그런 것치곤 크게 감흥이 일진 않았다. 나카타의 파트는 찡한 구석이라도 있지 카프카의 이야기는 그런 부분도 전무해서 가독성이 떨어졌다. 15살의 나이답게 중2병 느낌도 좀 있었고, 그 느낌을 제법 잘 포장하느라 작가가 애쓴 티가 보이지만 의미도 계속 부여되면 지겨운 법이라 흥미가 금방 바닥이 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을 읽었는데 기대엔 못 미쳤지만 다른 작품은 또 어떤지는 기대된다. <상실의 시대>나, <1Q84>나... <해변의 카프카>만으로 이 작가한테 딱히 큰 감정이 생기진 않았으니 나머지 작품들로 읽고 판단해야겠다.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건 진짜 내 이름이 아니에요. 다무라는 진짜지만.

하지만 자네가 스스로 정한 거잖아?

오히려 그게 중요한 거야. - 상 308p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 - 하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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