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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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나는 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나머지 관련 소식을 틈틈이 찾아보곤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혹은 흥미로운 제목이나 설정을 가진 작품을 보면 우리나라엔 언제 출간할까 궁금해 하는데 이 작품이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였다. 전쟁터의 요리사들. 취사병 주인공이 전쟁터에서 마주하는 몇몇 미스터리를 푼다는 일상 추리소설 계열의 작품으로 설정만으로 적잖은 관심이 갔다. 비록 3개월간 지원을 갔을 뿐이지만 나 역시 군대에서 취사병에 적을 두긴 했으니까.

 내 원래 주특기는 포병이었는데 포병 부대에 가는 병사는 주로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전투 포병, 비전투 포병으로. 줄여서 전포, 비전포인데 나는 전포였고 이제 나머지 계원, 운전병, 사격지휘병, 관측병, 측지병, 통신병, 그리고 취사병이 이에 속했다. 한 대대에 전포와 비전포가 대략 반씩 있었는데 주특기 별로 나눈다면 똑같은 주특기를 가진 전포의 수가 월등히 많아서 그들의 입지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포가 다른 주특기를 가진 병사를 어떻게 업신여기는 일이 많았는데 도대체 그를 눈앞에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중 취사병의 입지가 가장 약했다고 할 수 있다. 쉬는 날 없이 조리에 시달리는 취사병이 어떻게 보면 가장 저평가 받는 보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처럼 '엄마 놀이'라고 비아냥거린 사람은 못 봤지만 '꿀을 빤다'는 욕은 진짜 많이 들어봤다. 물론 전투에 나서는 병사가 가장 중요한 병사라 할 수 있지만 군대 조직에 있어 아주 불필요한 병사가 있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취사병을 두고 한 당시의 뒷담들은 아주 생각이 짧은, 그야말로 혐오에 가까운 편견이라는 말 외엔 붙일 말이 없다. 막말로 안 먹고 어떻게 전투를 하겠다는 건데?

 앞서 말했듯 비록 3개월이지만 취사병 생활을 해봤기에 이 작품의 소재에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작 내 기대완 달리 작중 주인공들은 취사병임에도 전투도 겸하는 병사들이었지만 나름 주특기의 고충과 애환은 잘 살리기도 했다. 때는 미국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2차 세계대전에 화려하게 참전한 이후로 갖가지 사람들이 모인 주인공네 부대가 전쟁터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고 곤경에 빠지는지 매우 사실적이고 중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일본 사람인 만큼 전쟁에 대한 요상한 묘사가 있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정말이지 기우에 불과했다. 왜 하필 일본 저자가 미군의 얘길 썼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작중에 드러난 작가의 전쟁관에서 엿볼 수 있다. 하긴 일본에 극우만 있을 리도 만무하고...


 비교적 긴 분량의 단편이 5편 수록된 연작으로 전쟁의 이모저모를 잘 묘사했다. 전쟁을 다룬 문학 작품을 많이 찾아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수준급의 고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조국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서 적을 죽이는 내용에 국한하지 않고 취사병이란 소잴 살려 군대라는 조직의 내부적인 이야기도 풀어나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고찰도 담아내고 있다.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되긴 하지만 군대도 결국 하나의 직장이란 점, 그렇기에 군대에 적을 뒀다고 모두가 똑같은 목표 아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통찰력 있게 바라봤다. 전선에 뛰어들고 싶지 않아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병사, 전투에 관여를 하지 않는 상사의 부정어린 행동을 목격했을 때의 병사들의 반응 등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군대를 다녀온 나 같은 독자는 물론 군대에 가지 않거나 갈 일이 없는 독자도 꽤 감탄하며 읽을 내용이지 않나 싶다.

 엄밀히 말해 군대 및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엄청나게 재밌게 읽진 않았지만 소재를 소홀히 다루지 않은 작가의 솜씨와 열정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추리소설의 틀 안에서 보면 약간 애매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애매한 요소는 재독할 경우 또 어떻게 읽힐는지 모른다. 아무튼 제법 긴 기다림 끝에 출간된 작품이 생각보다 괜찮게 읽혀서 참 다행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내가 출간되길 기다리는 어떤 작품들도 빨리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팀, ‘악의는 없었다‘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굴절된 감정과 공포심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다. 극복하느냐 아니냐는 너 자신이 결정해야 해.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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