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상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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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전작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을 읽었을 때 후속작을 언제 읽게 될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요네자와 호노부가 지금만큼 이름값이 높던 때가 아니라서 그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는 게 다소 막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제대로 빛을 받아 꾸준하게 신작이 출간되는 요즘이 정말 좋다. 책의 외관이 너무 예쁜 나머지 가격대가 좀 있지만 그만큼 소장 가치가 있으니 너그럽게 지갑을 열 수 있다.

 '소시민' 시리즈의 후속작은 분권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왜 굳이 분권했는진 모르겠다. 사토 다카코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은 학년별로 3권씩 나눴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그런 구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분권으로 출간했던데 뭔가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감이 안 잡힌다. 최근 한 권이 800쪽에 달하는 <가족사냥>을 2권에 걸쳐 읽었더니 그냥 넘기기 힘든 부분이다. 뭐, 어쩌자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총 500쪽 이상이라는 시리즈 역대급 분량은 시리즈 사상 역대급 스케일과 재미를 안겨줬다. 본성을 숨기고 소시민이 되겠다는 모토 아래서 많은 사건을 겪고 끝내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 고바토와 오사나이. 이 둘의 개별적인 시점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이야기가 좀 더 방대해진다. 그 와중에 연쇄적인 방화 사건이 발생하는데 작품 전개 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두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소시민의 일상이 흘러가는 와중에 그림자를 드리운 사건, 과연 둘은 바람대로 소시민의 길을 관철할 수 있을까? 내가 봤을 때는 영 글러먹은 것 같다.

 '소시민'이라는 단어로 명명되는 평범한 인생살이가 주인공네들의 목표라니, 수수께끼와 그 풀이를 목적으로 삼는 추리소설의 갈래와는 사뭇 맞지 않는 감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본래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혹은 수수께끼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들인 이상 종래에는 자신들의 본성에 충실해진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이치를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서 깨닫는 게 개인적으로 좀 안쓰러웠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이 고백했다고, 상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가령 '소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상대와 사귀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 그렇게 이상하게 시작된 연애는 좋게 끝날 리가 없다. 고바토와 오사나이도 마찬가지. 둘의 마인드는 보기에 따라서 상당히 도발적이고 발칙하기까지 한데 관종인 우리노와 대조돼 짠함과 알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그리는 고등학생다웠다고 할 수 있으려나?

중간 중간 나오는 소소한 수수께끼와 추리도 재밌었는데 막판에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그려지는 전개도 재밌었다. 재능이 있지만 그걸 살리기보다 죽이려고 하는 자가 활약할수록 재능은 없는데 명성을 얻고 싶은 자의 모습이 처량해진다. 이 전개는 그토록 읽고 싶었건만 막상 보게 되니 짠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마디로 냉소가 극에 달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전작들을 읽은 게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나름대로 흐름을 쫓아가기엔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후속작인 겨울철 뭐시기 사건은 언제 나올까? 작가의 고전부 시리즈가 일본에서 신작이 발표됨과 동시에 번역 출간되고 있으니 출간만 되면 머지않아 읽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다만 걱정인 건 정말 다음 작품이 마지막일까 하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땐 고전부 시리즈 못지않은 매력이 있는데... 이 시리즈도 재조명된다면 좋겠다. 마치 <빙과>의 애니메이션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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