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냥 - 하 - 개정판
텐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8.4






 과작이지만 내놓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는 텐도 아라타의 작품을 읽는 건 거의 도전에 가까운 일이었다. 상권과 하권 총 합쳐서 1,560 페이지인데 2주간 힘겹게 읽어냈다. 다 읽고 난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후에 읽은 3, 400쪽 책들이 너무 빨리 읽히고 있다.

 텐도 아라타의 작품이 힘겹게 읽히는 건 비단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량에 비하면 빨리 읽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좌우로 저을 것이다. 이 작가는 흔히 말하는 작가적 사명감을 안고서 집필에 임하는 작가라 다루는 내용이 하나같이 무겁다. 그런 작가 특유의 접근이 분량을 떠나서 독자의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나는 처음엔 압도적인 불호였다. 너무 부담스러운 데다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 대로 긁어 모아 퍼붓는 직설적인 문장들은 차라리 인문학에 가까웠는데 엄연히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으니 불협화음처럼 느껴졌다.


 <영원의 아이>, <애도하는 사람> 때도 느꼈지만 이 작가는 큰 흐름 속에 존재하는 갖은 인생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커다란 결론으로 달려가는 글쓰기가 능하다. 중간에 산으로 가지 않고 끝장을 보는 끈기는 확실히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발견하고 고찰해낸 주제의식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교훈적이거나 동의를 강요하는 느낌을 주곤 해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가는 아니다.

 이 작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은 아동 보호 센터의 직원 히자키 유코, 직업의식이 없는 교사 스도 슌스케, 힘든 가정사를 외면하기 위해 막장어린 짓에 손을 댄 형사 마미하라, 이렇게 세 명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일가족 살해 및 자살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중에 이들 세 주인공의 얘기가 진행되는데 도대체 각 이야기가 언제 접점을 이룰지 몰라 읽는 내내 답답했다. 평화니 전쟁이니 가족이니 폭력이니 아픔이니 하는 것들은 알겠으니까 제발 구체적으로 이야길 좀 진행시키자는 생각이 몇 번 들었는지 모른다.


 작가의 방대하고도 서서한 접근은 처음엔 가독성이 떨어졌고 중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차츰 작가가 원하는 바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묘하게도 계속 읽게 됐다. 단란할 줄 알았던 한 가정이 어떻게 망가지고 끝내 일가족 살해 및 자살로 치닫는지 살펴보기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써 괜찮은 진행이지 않았나 싶다. 등장 인물의 입을 빌린 작가의 설명이 어느덧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발전해 사람을 참 방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히자키 유코나 스도의 부모님 같은 사람을, 특히 후자 같은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히자키 유코는 행동력에 있어 다소 무모한 경향이 있어 주위의 반감을 사는 인물이다. 그가 가진 사명감과 도덕적 기준이 바람직하다곤 생각하나 그런 신념 하나 믿고 독선적으로 밀고 나가는 건 안일한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던 것이다. 자의식이 강하다거나 다른 사람을 깔보는 유형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의 이런 느낌엔 논란이 있을 듯하지만 섬세하긴 커녕 오그라드는 말이 앞서는 인물 묘사를 보노라면 입만 살았다고 반감을 가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그렇게 와 닿을 수 없었다. 스도의 부모 같은 경우엔 난감할 정도로 융통성도 없고 독선적이기까지 해 내심 그 가치관, 꼭 실패하고 불행해지길 바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작품이 단순히 입바른 소리만 해댔으면 애초에 완독하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전근대적 가치관은 우리나라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가치관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듯 스도와 마미하라가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전개가 이뤄져 점점 몰입됐다. 작중에 그려지는 가족의 유형이 한둘이 아니라 뭐 하나 예로 꼽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면 균열이 일 운명이었을지 모를 가족상에 대해 작가가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터라 결말의 여운이 산뜻하게 다가왔다.

 반드시 이만큼 길었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량의 값어치는 뒤로 갈수록 해내고 있어 인내심을 갖고 읽길 추천한다. 뛰어난 서스펜스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내용을 보고 실망하는 건 당연한 일일 텐데 그래도 제법 갖가지 가족/소년 범죄를 총망라하고 있으니 사회파 추리소설의 틀을 벗어났다고도 하진 못하겠다. 아무튼 정서가 살짝 맞지 않아도 작가의 정성 하나만큼은 무지하게 티가 나기에 - 이제 와 말하긴 그렇지만;; - 작품을 이 이상 폄훼하기가 주저된다. 뛰어나게 문학적이진 않지만 방대한 전문성이 인문학 서적에 필적하는 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지 않은 채 취직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고...... 진정한 정신적 자립을 이루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된 사람은 가정을 자신의 인생을 긍정해 주는 곳으로써 원하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 상 583p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불안해하거나 재미있어 하거나 나 몰라라 하는 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지. - 상 693p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고민들을 당신도 짊어져 봐, 이 나라 구석구석에 있는 약자들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짊어지고 걸어 보라고. 그러고 나서, 하지만 나는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조심조심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나는 좋아. - 하 528p




누군가한테 심각하게 생각해라, 생각하지 마라, 라는 소리 듣는 거, 너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니? - 하 6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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