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1 - 어느 만화가의 시코쿠 헨로 순례기
시마 타케히토 지음, 김부장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9.8






 저번 학기 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방학 동안 여행이라도 많이 가자고 다짐했었다. 현재 포스팅을 올리고 있는 말레이시아가 첫 번째 여행지, 그리고 두 번째 여행지는 2주 뒤에 갈 예정인 마츠야마다. 그래, 무려 11번째 일본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색다른 곳이다. 일본을 이루는 주요 4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섬에 있는 도시 중 한 곳인데 이번엔 마츠야마와 근교, 한마디로 에히메 현을 여행하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도 잘 다녀와야지.

 어쩌다 시코쿠 섬에 관심이 가게 됐는지 계기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여러 매체에서 시코쿠에 대한 얘길 접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된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이 만화의 경우는 시코쿠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간혹 언급이 된 작품인데 이번 여행을 핑계 삼아 드디어 읽게 됐다.


 시코쿠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헨로'라고 하는 순례길이 있다고 한다. 시코쿠에 있는 총 88개의 절을 도는, 자연스레 시코쿠도 한 바퀴 도는 순례길로 원래는 불교 수행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의 일종으로, 자아 성찰을 위해, 혹은 방황하거나 도망을 오는 사람들이 순례길에 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이 만화의 저자도 에로 만화를 그리다 '자신이 정말 이 길을 가도 되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눈앞을 가로막아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때 경험에서 느낀 바를 정리해 순례기로 만화를 그렸는데 이걸 듣고 사람의 일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싶었다. 벼랑까지 몰려 도망친 것이나 다름 없는 길에서 만화적 영감을 얻었다니, 어떻게 보면 부러운 일이다.

 이 작품 덕에 시코쿠 헨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탑승하는 것과 더불어 나의 버킷 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물론 낭만적이지도 않고 녹록치 않은 길이란 건 작품을 보면서도 충분히 느껴졌다. 이야기는 저자의 분신인 남자 한 명과 퇴사하고 방황하는 여자 한 명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작가가 걷는 동안 참 많은 얘길 들었는지 에피소드가 상당히 방대했다. 순례자에게 베푸는 호의인 '오셋타이'를 노리고 시코쿠 전역을 어슬렁거리는 '직업 헨로'와 매일 잘 곳을 걱정하는 순례자들을 노리는 사람들 등 부정적이고도 감상에 젖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수록돼 작가가 작품을 그리면서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사전 조사에도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지금 이렇게 걷는다고 인생이 뭐 크게 달라지기라도 하겠어? 걷는 동안 작가의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작품 내내 떠다닌다. 그 질문에 한 스님이 주인공한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인생을 산다 해도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다.

 만화가가 되기 전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주인공은 만약 경찰이 됐더라면 '그때 만화가를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을 것이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달고 산다. 이는 당연하지만 헛되지 않은 괴로움이다. 긴 걸음 속에 계속 반복되는 이러한 후회는 결실을 맺을 수도 혹은 비참하게 침잠될 수도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순례기를 만화로 그리겠다는 목표가 세워졌고 좌절도 많이 겪었지만 88번 절까지 완주하고 결실을 냈다.


 모두가 주인공 같지는 않다. 완주해도 얼떨떨해 하는 사람도 있고 88번까지 찍고도 다시 반대 방향으로 절을 도는 사람도 있고 끝없이 시코쿠 섬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있다. 모두 다 자의지만 그 결과가 항상 같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각의 순례에 가치나 무게를 달리 두어선 안 되리라. 물론 악용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지만, 종교적인 목적 의식이 없는 사람이 꽤 되지만, 이 고행이 명쾌한 답을 주지 못허거니와 답을 얻기란 쉬운 일도 아니지만 각자가 내딛는 걸음은 함부 특정할 수 없을 이야기가 있는 법. 어딘지 작가의 인생관이 엿보였다. 허울만 좋은 소릴 내뱉지 않는 게 무척 좋았다.

 생각보다 식상하지 않았고 진지했으며 실용적이었다.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헨로를 하게 된다면 이 책을 참고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헨로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책들이 몇 권 있던데 그 책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자네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계속 가도 되는지... 불안한 게 아닌가? 그럼 자네가 편해질 수 있는 말을 해주지.

자네는 어떤 인생을 산다 해도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어! - 1권 14번 ‘코스 아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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