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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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생소하기 그지없는 중화권 추리소설이 잇달아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찬호께이의 공이 크다. 그의 <13.67>은 그야말로 홍콩 출신 작가이기에 담을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해 신선했고 단순히 신선함을 넘어 추리소설적 완성도도 뛰어나 어떻게 보면 중화권 추리소설 출판이 약동해진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찬호께이의 몇 안 되는 장편으로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수상하며 작가가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준 작품이다. 시마다 소지는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가인데 중화권을 비롯한 신진 추리소설가들을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국제적인 추리소설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상을 받은 작가에게 시마다 소지는 '무한대의 재능'이라고 평했다는데...


 신참 형사로서 부부 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주인공 쉬유이가 강렬한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깨니 시간은 이미 6년은 흘러가 있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변 풍경은 변했고 자신의 조직 내 위치도 변한 듯하다. 무슨 연유에선지 상당한 기억 상실이 의심되는 상황에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앞에 나타난다. 자신의 마지막 기억이었던 부부 살인사건이 곧 영화화되는데 당시 수사를 맡았던 장본인으로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마침 자신 또한 사건의 마무리가 궁금했던 차라 기억 상실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한다.

 사건 당시 유일한 피의자였던 남자에 대해 알 수 없는 의심, 이 남자가 범인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게 마지막 기억인데 사건은 그 남자가 범인이고 도주하다 무고한 사람을 사살하고 만 비극으로 막이 내려졌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후 사건의 관계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의심을 품게 되자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자신이 6년 동안 이미 해봤을지 모를, 때늦은 것인지도 모를 수사를.


 느닷없으면서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소재와 전개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몇 겹에 걸친 반전을 연이어 터뜨리며 끝난다. 사건 내막은 비교적 단순한데 꼬아놓기를 되게 많이 꼬아놓아서 신선했다...기 보단, 약간 난잡하고 작위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말은 되는데 반전을 위해 상당 부분 우연의 일치에 기댔다는 게 좀 거슬렸다. 물론 우연의 일치는 생각보다 자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장치이기도 하나 이 작품에서 그 정도가 살짝 과했다고 - 그나마 복선은 괜찮았다. - 본다. 그리고 작품에서 기억 상실을 비롯해 해리,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심리적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게 핵심 반전에까지 다 적용시키니 이 또한 과하다고 느껴졌다. 좋게 말하면 신인의 패기인데 내가 봤을 땐 욕심이 지나쳤다.

 물론 기억을 상실한 특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논리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상황 자체는 몰입이 잘 됐고 후반에 들어서는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들었던 건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소재, 혹은 그리 길지 않은 분량 - 300쪽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짧다. - 탓인지 전개가 뭐든 급박하게 돌아가서 다 읽고 나서 그리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13.67>에서 느낀 분위기, <스탭 S.T.E.P>의 두 단편에서 느낀 참신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시마다 소지의 '무한대의 재능'이란 말에도 아주 동의는 못하겠다. 그러나 과하고 급박한 한편으로 처음부터 결말까지 자기가 벌려놓은 이야기를 수습하는 책임감을 다해서 완성도는 무시할 수 없었다. 대표작이나 수작은 아니지만 무난함 그 이상을 보여준 건 분명했다. 작가에게 관심이 있다면 아주 후회할 독서는 아닐 것이다.

 자, 이제 최근에 출간된 <망내인>을 읽을 차례인가.



 p.s 작가의 다른 작품처럼 이 작품도 홍콩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다.  홍콩... 별로 관심 없었는데 한 번 검색해봐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규칙이든 깨진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 아름답게 깨졌는가, 그리고 깨진 후에 새로운 발전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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