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녀를 사랑하다 올 에이지 클래식
낸시 가든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9






 이 작품의 원제는 'Annie on my mind', '내 마음 속의 애니'다. 주인공 리자가 애니와 만나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다소 약한 느낌의 제목은 우리나라에 출간되면서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로 바뀌었다. 매우 직접적인 이 제목은 한마디로 자극적이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자극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편협한 감상이지 않았나 싶다. 동성애가 과연 자극적인 것일까?

 1982년도에 출간된 성장소설로 동성애를 소재로 했기에 파격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일부 학교 도서관에선 금지 도서로 지정되고 불로 태우기까지 했다나. 아마 그 학교는 리자가 다니는 학교처럼 엄격한 미션 스쿨임에 분명하다. 아니, '엄격하다'고 말하는 건 너무 띄워주는 표현이다. 극단적인 미션 스쿨. 그런 학교나 이 소설을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지루하리만치 순수하다. 우연히 미술관에서 만난 두 소녀가 사랑하는 이야기다. 처음엔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인지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것은, 더군다나 한 번도 동성을 사랑한 적 없었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므로, 자신이 소수자가 된다는 것은 다수의 억압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게 될 것이므로.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선 사랑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좀 남달랐다. 누군가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지만 소녀들, 특히 리자에겐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애니를 친구로서가 아닌 연인으로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리는 일이니.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가르는 선, 누구도 선의 어느 한 쪽에 서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을 사랑할 뿐이다. <캐롤>에서 그러잖은가. 사랑한 사람이 마침 동성이었을 뿐이라고. 그 감정은 이성애자의 감정과 하등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단정짓지만.

 확실히 동성애는 기존의 관념으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소재긴 하다. 아무래도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무수한 감정 속에서 사랑은 가장 티끌이 없는 감정이지 않은가.


 동성애를 다룬 청소년 성장 소설의 고전은 정공법 그 자체였다. 앞서 말했듯 지루할 정도로 순수하다. 어쩔 때는 전개가 답답하다 싶은데 그러다가도 둘의 관계에 뭔가 진전이 생기면 어느 순간 응원하게 된다. 때문에 불안했다. 대개 동성애자 주인공이 맞이하는 결말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인상적인 결말을 암시했다. 소녀와 소녀가 사랑했다고 무조건 결말이 슬프리란 법은 없다. 이는 소녀와 소녀의 사랑이 자극적일 것이란 지레짐작보다 더한 반전이었다. <캐롤>에서도 느꼈지만 아주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스티븐슨 선생님이나 위드머 선생님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우리가 한 행동은 우리 스스로 한 거예요. 우리는 서로 사랑해요. - 286p




무지가 이기게 놔 두지 마. 사랑이 이겨야 해. - 3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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