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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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난 '맘충'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마마보이'보다 상위 버전의 욕일 거라고 짐작했다. 굳이 풀이하자면 엄마 찾는 벌레정도려나 싶었다. 설마 벌레라고 가리키는 대상이 엄마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실제로 저자가 지나가는 남자한테서 맘충이란 욕을 들었을 때 구상이 시작됐다는 이 소설은 지극히 여성의 시각에 입각한 소설이다. 이런 부분은 남성 독자인 입장에서 아주 낯선 것이었다. 불편함 이전에 낯섦이 더 컸다. 특히 급식을 먹을 때 출석 번호가 뒷자리인 여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나 사호한 호의에 착각해서 덤벼드는 남자에 대한 무서움 등은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특성상 대부분의 여성의 공감을 샀지만 어떤 남성들에겐 공분을 사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 김지영의 일생을 엿보노라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어떤 식으로 차별받고 사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남자 독자는 바로 이 부분에 동의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각종 안 좋은 면만 긁어모아 특정 성별에 대한 적개심이나 동정심을 조장한다고 난리를 치던 글을 읽었는데 나 역시 같은 남자이거늘 크게 공감할 수 없는 말이다.

 이 소설이 제법 직설적이고 작정하고 만들어진 페미니즘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대개 이런 경우엔 일말의 불편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간간이 고갤 드는 통계 수치나 의도가 명확한 전개는  실험적이거나 뻔해서 도리어 반감이 들 법도 했다. 이런 형식적인 요소들을 문제 삼는다면 이래저래 불편한 소설이긴 했다.


 작품 뒤에 실린 해설에선 평범함을 추구하여 독창성을 가진다며 이 소설을 일컫는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이지 여성이라서 쓸 수 있는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얘기되지 않았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일상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절대 공격적이지 않았다. 작중에서 김지영을 좌절케 하는 주체적 대상들은 전부 남성이지만 그게 곧 남성에 대한 적대심으로 해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 왜 전부 남성인가? 왜 남성만 김지영을 괴롭게 하는 역할인가? 이렇게 묻는 사람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당사자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다. 난 <82년생 김지영>이 과장됐다고 하는 이야기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차라리 이 소설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의 과정에서 김지영에게 의지가 되고자 한 남편이 김지영에게 면박을 당하고 김지영의 불평등한 기분을 더욱 돋우는 존재로 그려진 부분이 다소 이성적이지 못했던 것은 살짝 마음에 걸렸으니까.


 최근 혐오라는 개념이 인지되면서 이상하게 더욱 격화되는 것 같다. 특히 한쪽 성이 다른 성을 혐오하는 모양새는 예전보다 더욱 극렬하다. 난 이런 혐오의 근원에는 타자에 대한 무심함과 무지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데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이 무심함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처하게 된 상황, 처하게 될 상황에 집중하고 풀어낸 소설이 그간 페미니스트라 자칭했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기에 남자가 여자를 안다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였는지... 정말이지 무심함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술술 읽히고, 여성의 현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심지어 간만에 울컥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여성 차별이란 키워드에 집중하니 소설 전개 방식이 토막난 경향이 있지만 그 일관된 주제의식이 또 집중을 높여줬다. 한마디로 집약적이었다고나 할까. 이 소설은 여성의 처지가 현재진행형임을 아주 잘 시사하며 그 어떤 페미니스트 서적보다 흡입력이 강했다.


 여성 차별 문제가 단시간에 결과가 나타날 만큼 어제 오늘 일이 아닌 터라 앞으로 이 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연대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현재 이 소설을 둘러싸 던져대는 막말 - 소설의 완성도 이전에 리얼리티를 문제 삼는... - 속에 담긴 그들의 무심함에 결코 굴해선 안 된다. 진실한 통찰과 비판도 없이 자신이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아서 범하는 적대심이 언제까지고 활개쳐선 안 될 일이다. '여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고도 광대한 남은 식민지'라는 말마따나 그간 되풀이된 정세에 이젠 불만을 표하고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해야만 한다. 안 그랬다간 계속 되풀이될 게 뻔하니까. 내겐 이 암담하고도 끝내 무기력했던 소설이 그렇게 다가왔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 132p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 145p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 156p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165p




여기까지가 내가 읽은 <82년생 김지영>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82년생 김지영 혼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함께 고민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기 때문이다. - 1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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