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4.5







 내가 마지막으로 본 우리나라 드라마는 김명민 주연의 <베토벤 바이러스>다. 그 이후로 드라마 자체를 보질 않는데 이유는 별것 아니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아서. 이 말을 납득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얘기를 좀 더 풀자면, 스릴러건 음악물이건 사채업자 이야기건 뭐건 로맨스와 키스신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는 공식이 싫증난다는 얘기다. 로맨스니 뭐니 하는 것들이 결코 나쁘단 얘기는 아니지만 뭘 틀어도 로맨스라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러브 라인이 흥행을 위한 공식이라 할지라도. 아니, 흥행의 공식이기 때문에 다뤄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문제다.

 일본 드라마나 미국, 영국의 드라마도 흥행을 위한 일종의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지만 시장의 크기와 다양성 면에서 비교가 불허하다. 우리나라도 요즘 케이블 드라마가 각광받으면서 제법 다양한 컨텐츠를 다루나 본데 원체 불신이 깊은 나는 그마저도 미심쩍으니... 당장 일본에서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하는 드라마라고 하면 정말 로맨스 없이 - 러브 라인이 있다 해도 썸만 타다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 장르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솔직히 드라마를 안 본 지 너무 오래 돼서 내가 드라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수 있다. 그래도 간혹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나 혹은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을 접하는 경우가 있어 아주 할 말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순전히 나의 선입견일 수 있는데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은 정말이지... 소설의 맛 자체는 그닥 훌륭하지 않다는 걸 읽을 때마다 느낀다.

 아까도 말했듯 드라마를 원체 보질 않는 탓에 하명희라는 드라마 작가는 완전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다. 작가의 대표작도 마찬가지. 내가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라고 과거에 쓴 소설이 요번에 <사랑의 온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함과 동시에 원작 소설도 제목이 바뀌면서 재출간됐다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사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건 소설을 먼저 쓰긴 했지만 결국 드라마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라는 것이다.


 읽는 내내 차라리 드라마로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시종 소설의 작법 자체가 아예 눈에 들어오질 않더라. 드라마화를 결심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텍스트이며 적당한 소설화를 거쳤지만 그게 다다. 나 한 사람의 이상한 장애라고 치부해도 상관은 없는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서두에서 작가는 사랑의 피상성과 관계의 어긋남에 대해 쓰고자 했고 제법 근사하게 이야길 풀어냈지만 결국 익히 알고도 남는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독서는 누가 뭐라 해도 굉장히 능동적인 행위다. TV를 틀어놓고 보는 것과 책장을 펼쳐 읽는 행위는 눈으로 행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절대 같지 않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 상상으로 풀어내고 다음 내용을 찾아가는, 제법 품이 많이 드는 행위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하고자 할 때 평범한 이야기를 들이댄다면 살짝 허탈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사랑은 아주 오래 전부터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소재고 누구나 천착해는 주제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선 기억에 남는 창작물이 나오기도 힘들고 그걸 접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물론 이 소설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아까도 말했지만 드라마로는 상관 없을 그럭저럭인 수준의 작품이다. 무슨 X폼을 잡겠다고 이리 삐딱하게 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딱히 감흥은 일지 않았던, 그야말로 읽었는지 말았는지도 기억이 애매한 작품에 불과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내게서 '사랑'에 대한 잡설을 이끌어내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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