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6.6








 호러 장르를 자주 접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로는. 무서워서... 라기 보단 특유의 잔인한 묘사가 싫은 것이다. 제아무리 '심리적 공포'를 표방한들 피가 터지는 폭력이나 죽음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잖아. 나는 이런 요소들을 적어도 시각적으론 접하고 싶지 않은 대신 활자는 선호하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활자가 호러 본연의 맛인 상상에 뒤따르는 공포를 잘 살려주는 면이 있으니까. 그마저도 잘 안 읽긴 하지만. 전엔 기시 유스케의 호러 소설을 읽기라도 했는데...

 로맨스, 추리소설, SF, 그리고 호러는 아주 대표적인 장르 소설 중에 호러는 유달리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귀신이나 사이코패스, 그게 아니면 불가사이한 것과의 만남, 공포... 처음에 말했듯 자주 접하진 않지만 '호러'란 얘기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란 대개 이렇다. 가끔씩이나마 접하는 호러 작품이라고 해서 내가 가진 이미지를 벗어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추리소설과 맞닿아 있는 듯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호러 장르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괴기를 다룸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추리소설에서 등장하는 초자연 현상이나 괴기는 인과 관계가 분명하다고 간주하고 그를 논리적으로 파헤치려 - 대체로 귀신의 소행이라고 하면 알고 보니 인간의 트릭이었다고 하는 식으로. - 든다. 반면 호러는 현상에 대한 공포의 체험, 그 심리를 낱낱이 묘사할 뿐이다. 그래서 호러 작품은 사건 해결과 같은 결말과는 결을 달리하는 마무리로 끝맺어지는데 이게 아주 찝찝하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를 읽으니 호러의 경향 중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작가 개입. 작중 소설가가 아닌 실제 저자가 주변에서 들었거나 아니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 호러에서 애용되는 것 같다. <잔예>도 비슷했는데 이 작품은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묘사하는 암시가 있어서 참 신경 쓰이게 만든다. 이게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소름 끼치는 상상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살짝 각오가 필요한 부분일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이러한 작가 개입 요소가 다소 난잡하게 느껴졌다. 의도는 알겠는데 - 혹시 진짜였는지도 모르지 - 그게 너무 티나니까 문제인 것이다. 공포에 대한 감상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다지 신용할 수 없는 얘기일 순 있음을 명심하길 강조하고 말하건대, 작품은 괜히 무서움을 억지로 쥐어짜내려는 듯 군더더기를 붙이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은 작가가 6편의 호러 단편 소설을 집필하고 그걸 엮어 책으로 펴내려고 한다. 그때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막간에 기존 단편 소설을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에게 닥친 기묘한 일을 그리고 있다. 이 막간의 이야기를 다른 소설 6편과 별개의 이야기로 읽는가, 아니면 연관 지어서 읽어 새로운 차원의 공포를 느낄 것인가. 소설은 구성적인 면에서 풍성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솔직히 본편인 단편 소설들이 시시한 내용이라 잔재주를 부린 게 아닌가 싶다.


 첫 번째 단편인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은 신선하고 좋았다. 자살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녹취 테이프는 적잖이 공포를 자극했다. 특히 각각의 테이프의 내용에 공통된 미스터리가 있는 게 오싹했다. 하지만 공포 소설 특유의 허무한 결말은 사람 맥빠지게 만들었고 이 결말이 나중에 막간과 이어진다는 게 드러났을 땐 놀랍지 않고 지겹기만 했다. 나머지 단편은 솔직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범작이라 언급할 기운도 나지 않는다.

 작가 개입 형식의 호러 소설은 나름 괜찮은 설정이라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너무 기운 빠지고 싱거우면서도 다소 헐겁게 다뤄진 것 같다. 차라리 첫 번째 단편만 집중적으로 살려서 가령,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우연히 죽은 자의 녹취 테이프를 듣는데 그게 최근 자신을 둘러싼 기이한 현상에 대한 힌트로 이어지면서...' 라는 식으로 풀어나가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다양한 괴담과 그에 얽힌 미스터리, 그리고 괴담을 다루는 작가와 편집부에 닥친 위기가 읽기 지겨운 만큼 보다 본격적인 장편 호러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귀신 이야기에 그닥 흥미가 없어서 작품의 매력이 덜 와 닿은 것인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는 집단에서의 개인이 겪는 소외감, 자아의 말살, 아니면 사이코패스의 태동 등 현실적인 차원의 일들에 공포를 느끼는 편이라 미쓰다 신조의 이 소설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미쓰다 신조의 추리소설은 어떨까? 그걸 한 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