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1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9.2








 냉동 수면, 가사 로봇, 타임 머신과 타임 패러독스, 복수극, 그리고 고양이... 이렇게 다종다양한 소재가 어우러진 SF는 처음 읽어본다. SF 장르의 토대를 개척한 거장 하인라인의 대표작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지인에게 개요를 들려줬더니 '뻔한 내용이네.' 라고 했지만 읽으면서 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50년대 소설이라기엔 무척 재밌고 신선하게도 읽혔다.

 뛰어난 발명가인 주인공이 친구와 함께 세운 회사에서 자신의 지분을 잃고 쫓겨나는 일을 겪고 만다. 일의 내막엔 자신의 약혼녀의 배신과 사내 정치에 소홀한 대가가 톡톡히 녹아있다. 이내 만사가 부질없다고 느낀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자신의 반려묘와 함께 냉동 수면에 들어가 미래로 가고자 한다.


 제목의 의미를 부연하는 초반에서부터 확 눈길을 끄는 이 소설은 도저히 다음 챕터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몰입도가 훌륭했다. 더욱이 시종 유쾌한 주인공의 내면 세계와 더불어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SF에 가졌던 편견을 사라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과학 소설이다 보니 딱딱하고 차가울 것이라고 예상하게 될 텐데 이 작품에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게 SF란 결국 설명을 달고 사는 장르로 비춰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설정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 하지 않는 SF는 없던데 이 부분이 늘 얘기했던 SF의 높은 진입벽의 실체라 해도 무방하다. 설명이 지리멸렬해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으면 아무래도 만족스럽게 읽긴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는 어땠을까. 주인공이 발명한 가사 도우미 로봇 '프랭크'를 비롯해 30년 뒤의 미래 - 그게 2000년이다. <미래소년 코난>을 볼 때도 그랬지만 내가 작중 미래보다 더 미래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 에 대한 묘사도 타임 머신의 이론에 대한 설명도 솔직히 100% 이해되진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추리소설로 예를 들면 트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럴수록 이야기의 매력이 중요해지지 않나 싶다. 설령 작품 속 디테일을 전부 이해하고 넘어갈 순 없더라도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엔 지장이 없도록 이야기가 명쾌하고 흥미진진한 게 최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읽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가치관에 반하는 요소가 나와 거슬리는 게 고전의 숙명이라면 이 작품은 그 숙명에서 꽤나 자유로웠다. 작중에서 드러난 작가의 여성관을 집안일과 추한 최후와 롤리타(...)로 보이는 게 좀 걸리긴 하나 가사 도우미 로봇을 만드는 주인공의 목표나 고양이를 대하는 애정을 떠올리면 작가의 성향을 치우치게 바라볼 순 없을 듯하다. 어쨌든 작가는 미래 세계에 대해 상상하며 인간사와 맞닿은 과학 발전을 꿈꾼 공학도로서의 이상 - 약력을 보면 공학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 또한 겸비하고 있으니 제법 진보적인 부분 또한 느껴졌다.


 제아무리 고전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꿈꾼 소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일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도 지루했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남달랐던 게 생각난다. <여름으로 가는 문>도 비슷한 맥락으로 자못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비교적 가벼운 감성으로,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감각으로 집필됐을 소설은 과학을 학구적으로만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장르의 저변을 확대시키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 말마따나 SF 3대 거장인 하인라인의 대표작다웠다.

 결국 SF도 어엿한 문학이라고 한다면 최종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에서 평가가 갈릴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작가의 여성관 중 일부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고서, 혹은 그를 차치하더라도 서사적 재미가 탄탄하고 지금 읽어도 옛스럽지 않은 설정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기에 마냥 재밌게 읽었다. 생각보다 작중의 문제가 손쉽게 풀려 살짝 아쉬웠지만... 분명한 건 지금껏 읽은 그 어떤 SF 소설보다 가독성이 좋아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건데 그게 그 무엇보다 좋았다.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 소설이야말로 독자로서 가장 반가운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포함해 시공사에서 펴낸 하인라인 선집 5권을 전부 샀는데 남은 4권도 기대된다. 중편과 휴고상 수상작이던데 조만간 읽어야겠다. 그나저나 다른 3대 SF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도 궁금해졌다. SF에 대한 거부감이 낮춰진 건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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