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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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사람들이 하나 착각하는 게 있다. '동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 이 말은 동화와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없는 사람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다. 동화 창작의 본질은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이야기 -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 표현엔 어폐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의사 선생님', '역전앞'과 같달까? - 를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쓰기 어려운 문학이고 의식하고 읽으면 가볍게 읽히는 동화란 거의 없다.

 최근 동화를 비튼 다양한 2차 창작물도 적잖이 만나볼 수 있다. 동화를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심심찮게 개봉된다. 동화의 실사라는 게 사람들 이목을 끌기도 하고 고전에 가까울수록 현대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녹일 수 있으니 많이들 시도하는 것 같다. 고백하자면 단 한 편도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흥미를 돋우긴 하니 한 번쯤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동화를 패러디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동화에 SF를 접목시킨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번외편으로 부득이하게 본편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참 바람직하지 않게도 번외편부터 읽는 아이러니함에 이미 이 독서가 흡족스럽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애석하지만 시리즈의 외전임이 짐작되는 잔재미적 요소엔 큰 감흥이 일지 않았으나 외전답지 않게 완결성이 있어 그런대로 즐길 만했다.

 다들 잘 아는 '백설공주' 이야기의 악역인 여왕의 시점을 다룬 작품이다. 거울이 외모 콤플렉스를 건드린 나머지 공주에게 갖은 시련을 안긴다는 게 내가 여왕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의 다다. 소설은 여왕이 '루나'라는 나라의 왕이 되고 여러 사건을 거쳐 외모 콤플렉스가 심화되는 비극을 그렸다. 내 단편적인 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도 있게 인물을 묘사한 것은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악역이 왜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생각해 보면 무척 성숙한 궁금증이 아닌가 싶다. 날 때부터 악역이 아니라 어쩌다 악역이 됐는가 살펴보는 것은 치기 어린 시선의 소유자는 흉내도 낼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을 때도 범인의 동기나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는 전개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특히 외모 콤플렉스의 그늘에 평생에 걸쳐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내면은 정말 몰입됐고 공감도 많이 갔다. 지금은 덜하지만 나도 한 때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그 어두움을 굉장히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고전에 속하는 동화일수록 유명한 만큼 단순하고 유치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순함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인가 보다. 단순함 속에 불현듯 궁금증이 하나 피어났을 때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법.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팬픽션'이라고 2차 창작을 즐겼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모방이 아닌 창조에 가깝다. '백설공주'를 읽으면서 피어난 사소한 의문, '왜 여왕은 악역이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참 귀중하고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백설공주' 영화가 몇 있는 걸로 아는데 이렇게 여왕이 주인공인 작품이 있었나? 다른 여왕들은 어떻게 묘사됐으려나?


 외전을 먼저 읽은 게 못내 아쉬웠다. 이 작품을 읽으니 시리즈 본편도 궁금해졌다. '신데렐라', '빨간 망토' 등 여러 동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있다는데 그것 참 기대된다. 아무렴 외전이 이 정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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