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9.1







 이 책을 도대체 얼마만에 읽는 건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초등학생 때, 이 작품의 신드롬이 거의 끝물에 다다를 즈음에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내가 최초로 읽다 운 소설이지 않을까. 이 작품의 여러 평을 읽어보니 비단 나만 운 게 아닌 것 같다만.

 진한 부성애를 다룬 소설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작품일 것이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타협과 희생을 거듭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부던한 노력에 힘입어 병은 낫지만 끝끝내 아버지의 진의를 알지 못하는 아들의 심경을 교차하며 서술하는데 지금 읽어도 짠했다. 아들의 심리 묘사도 동떨어지거나 과장된 구석 없이 이뤄졌고 이 작품의 백미일 아버지의 심리 묘사는 가히 처연함 그 자체였다.


 굳이 말하자면 신파 소설이라 부를 수 있겠으나 솔직히 그렇게 폄훼하는 듯 부르는 게 그리 마뜩잖다. 중요한 건 울음이 아니라 그 울음이 터지는 상황일 텐데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울음이 뒤따르는 내용이라면 트집을 잡을래야 잡을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트집 잡는 게 이상한 일이다. 다만 거기서 어떻게 더 울리려고 괜히 수작을 부리는 게 못마땅할 뿐이다.

 <가시고기>가 눈물을 자아내려고 하는 경향은 별로 심하지 않았다. 어지간히 삐딱하지 않은 한 작품의 드라마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아들을 위해 펜을 내려놓은 시인으로서, 헤어진 전처의 전남편으로서, 현재 전처의 현재 남편에 비해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남자이자 아들의 아버지로서, 기껏 찾아온 천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가련한 사람으로서의 갖은 체념과 회한과 고통을 이렇게 절절하게 묘사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제목의 가시고기는 새끼를 두고 떠난 암컷을 대신해 목숨을 바치며 알을 지키다 알 속의 새끼마저 떠나면 바위에 머릴 박고 죽는 물고기라고 한다. 어디까지 맞는 설명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대놓고 결말을 암시하는 이 작품은 이미 공개된 결말을 향한 필연적인 장치를 속속 드러내며 잔인한 슬픔에 당도하게 만든다. 어떻게 상황을 이 정도로 악화시킬 수 있을까, 작가는 해피엔딩의 유혹을 받지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새삼 새드엔딩 작품을 쓴 모든 작가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아주 오랜만에 읽은 작품인데 다시 읽으니 예전의 감동 못지않은 감탄이 터져나왔다. 17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라 표현이 지금 읽기에 살짝 어색하고 옛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단순히 내용만 감동적인 게 아니라 구성적인 부분 등 소설적 내실도 탄탄해 사뭇 인상적이었다. 어느덧 '신파는 곧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p.s 우스겟소리지만 한때 공지영의 <고등어>, 안도현의 <연어>와 더불어 이 작품의 성공 때문에 물고기 제목의 작품은 많이 팔린다는 문학계의 속설이 있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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