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0







 <한자와 나오키>와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보면 이케이도 준만큼 조직의 병폐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작가도 없을 것 같다. 비단 은행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전직 은행원이었던 경험을 십분 살린 이 작가는 비정한 조직 생활의 쓴 맛, 그리고 그 안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함에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돌리지 못하게끔 만든다. 작품 속 거액의 돈의 행방 이상으로 몰입도가 있는데 날 때부터 혼자 오지에서 자란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처음 언급한 두 작품과 비교해 이 작품은 작가의 장기가 가장 잘 살아난 조직 소설로 통상적인 추리/스릴러 소설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니시키 씨도 늦게 등장하고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도 그렇고 그를 찾아 나서는 것까지 점진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작중 등장인물인 수많은 은행원의 가혹한 일상과 연동된 결과로 총 10명의 은행원의 등장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은행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적지 않은 수의 등장인물을 짤막하면서도 가독성 있게 처리한 점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중심 화자가 주기적으로 바뀌니 몰입도가 유지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는데 그를 감안해도 꽤나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은행의 부지점장부터 시작해 다양한 인생 배경과 입장을 갖고 있는 은행원들이 처한 갈등은 지극히 은행원스러운, 나아가 조직에 속한 인물들다운 행동거지를 보이는데 이건 정말이지 이 작가만이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피어나는 암투나 비극은 언제나 환영하므로 -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톰 롭 스미스의 데뷔작 <차일드44>를 무척 좋아한다. - 전개상의 지지부진함을 얼마든지 차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이유, 범인의 동기를 추적하는 'why done it?' 류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이 소설의 후반부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액의 돈은 어째서 사라져야 했고 니시키 씨가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결말과 에필로그에서 다뤄지는데 이때 마지막 파트는 신의 한 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사족 같았는데 이런 여지를 남겨두다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건 추리소설로도, 조직 소설로도 격을 상승시킨 마무리라 할 수 있겠다.


 이로써 이케이도 준의 국내 출간작은 전부 읽어봤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더는 출간이 안 되는데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 완성도를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융 미스터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작가라지만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보면 딱히 특정 이야기에 국한된 행보만 걷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가인데 - <한자와 나오키>를 비롯해 드라마화된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한자와 나오키> 원작 소설을 읽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영상만으론 전달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꼭 글로도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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