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8.2






http://blog.naver.com/jimesking/220949507979

 

 지난 번에 본 낭독극에서 아주 운 좋은 일이 있었다. 그 낭독극 자체도 초대받아 보게 된 것이었는데 연극의 원작 소설을 추첨으로 받기까지 한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제목이 하도 특이해 전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잘 됐다. 더군다나 김영하라니. 기댈 안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장편만 읽었는데 단편집은 처음 접해본다. 낭독극의 원작 소설인 '고압선', 일전에 학교 수업 때 다룬 소설 '피뢰침'부터 몇몇 작품은 드라마화, 영화화되는 등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유명한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확실히 그럴 만했다. 김영하의 다른 단편도 궁금해졌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전형적인 코미디 소설. 엘리베이터 낀 남자에게 신고할 때마다 겹치는 화자의 불운이 적당히 애가 타고 적당히 긴박감 넘쳤다. 풍자하는 사회의 모습도 알기 쉬운 구석이 있어 전체적으로 생각 없이 읽어도 감흥이 남는 작품이었다. 가벼워서 감칠맛이 나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결을 달리하기도 했다.



 '사진관 살인사건'


 제목과 전혀 다른 식으로 진행될 줄 알았다. 김영하니까. 김영하는 추리소설가도 아니거니와 꼭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더라도 아무튼 추리소설을 꼭 써야 한다는 이유도 없고 제목이 저렇다고 추리소설이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으니까. 뭐가 됐든 살인 사건 때문에 들춰진 사람들 사이의 균열을 다룬 점에서 나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잘 꾸며진 치정극이란 느낌은 강하지만.



 '피뢰침'


 번개를 맞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 번개에 인생의 꿈이니 뭐니 이것저것 대입하면 와 닿는 바가 달라질 듯하다. 1학년 때 수업 자료로 읽은 작품인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독특하기 그지없는 작품이다. 하여튼 이런 이상한 판타지를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비상구'


 뒷골목에서 배회하는, 거침없이 내달리는 청춘들의 자화상... 이라고 평론가들이 말할 것 같다. 김영하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에 쓴, 그러나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게 젊은 느낌이 물씬 베어 나오는 작품이었다. 각종 은어, 비속어 사용이 눈살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 작품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추측이지만 이 작품이 가장 쓰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압선'


 읽는 내내 몇 개월 전에 본 낭독극이 많이 떠올랐다. 공연의 연출자가 연극으로 잘 옮긴 거더라. 솔직히 나였다면 공연으로 만들 생각 자체를 못 했을 수도 있다. 투명인간 테마에 관심이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기본적으로 평범한 작품에 불과하다. 불륜에 빠진 화자가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인데 파멸의 방식이 강제로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생뚱맞긴 한데 사회적 활동이 완전히 봉쇄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 없지않아 있을 뿐이지만. 오히려 제목이 '고압선'인 이유를 파악하는 게 더 의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 링크한 낭독극 <고압선> 후기에서 다뤘다.

 이 모든 게 낭독극을 먼저 봤기 때문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어쨌든 거듭 말하건대 나였으면 연극화할 영감을 못 얻었을 것이다. 결과물은 상당히 좋았지만.



 p.s '사진관 살인사건'은 작가의 다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과 합쳐져서 <주홍글씨>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관심이 간다.

여자들은 한 번쯤은 바라는 것일까. 어떤 남자가 자기를 위해 남편을 죽여주기를, 목숨을 걸어주기를. - 71p




인생을 흉내내는 영화는 인생보다 더 지겹다. - 98p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가 경이로웠다. 나였다면 단 일주일도 힘들었을 터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굴러간다. - 240~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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