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안소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8.8

 

 

 

 

 

 

 소설을 읽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로 몰랐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으리라.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조사한 자료는 반드시 작품 속에 묻어나오기 마련인데 때론 대놓고 드러내서 읽기 버거운 경우도 있다. 교고쿠 나츠히코나 기시 유스케,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을 쓴 야마구치 마사야, <가다라의 돼지>를 쓴 나카지마 라모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작가들은 그 특유의 장광설로 악명이 높다. 책도 너무 두꺼운 것도 한몫한다.

 아무래도 설명이란 게 길어질수록 지치는 것이긴 하지만 내용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소설 본편과 별개로 놓고 읽는다면 - 쓴 작가들은 별개로 읽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 의외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래도 생소한 것들을 얘기하니 읽고 음미하기에 신선한 맛이 있다.

 

 우키요에라는 일본 특유의 판화에 대해서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옛날에 일본에서 흥했던 독특한 화풍의 판화 정도로 알고 있었고 '샤라쿠'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우키요에는 당시 서양 미술계에 영향을 줄 만큼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특히 샤라쿠는 그중에서도 이름을 날린 등 - 문외한인 나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니 -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소재다.

 저자인 다카하시 가츠히코는 최초로 비틀즈를 만난 일본인이면서 늦은 나이까지 우키요에를 연구하다 추리소설가로 등단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 작품 <샤라쿠 살인사건>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았으며 이후 '우키요에 미스터리 3부작'이라고 묶이는 두 편의 후속작까지 냈다. 그 두 작품도 읽고 싶지만 출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도슈사이 샤라쿠는 1794년에 달랑 10개월 동안 활동하다 사라진 수수께끼 같은 화가로 아직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우키요에 학회에서 제일가는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당대의 유명 우키요에 화가의 다른 활동명이 아니었는가 하는, 이른바 '별인설'이 셀 수 없이 거론됐지만 그중 정설로써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다. 이 작품은 이런 샤라쿠의 수수께끼 같은 행적을 두고서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번째는 샤라쿠는 누구인가, 두 번째는 샤라쿠의 정체를 둘러싼 우키요에 학회의 암투다.

 우연한 기회로 샤라쿠의 정체의 실마릴 발견한 주인공이 여행길에 오른다는 게 초반부의 내용이다. 맨 처음 자살로 판명된 유명 우키요에 연구가의 죽음으로 불길한 분위기를 암시하며 진행되는 이 작품은 중반부까지 샤라쿠와 우키요에 이야기로 내달린다. 이 과정이 사람에 따라 평이 극명히 갈릴 것 같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미술사에 특별히 관심이 있거나 하진 않지만 등장인물 간의 대화는 유독 흥미로웠다. 솔직히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할 순 없었고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우키요에에 대한 묘사가 내 상상을 자극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지만 설명으로 감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데 이번에 제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가끔 책 속에 샤라쿠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의 우키요에가 인쇄된 걸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보는 이로 하여금 매혹시킬 여지가 많은 양식이구나 싶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취향을 타는 작품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고 미술계에 대한 일종의 고발 비슷한 작품의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특수한 작품이다 보니 좋게 말하면 전문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소설인가 의심될 만큼 설명적인 초반부가 기다리고 있어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님엔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특정 소재가 전문적으로 다뤄진다는 그 자체에 구미가 당긴다면 꽤나 흡족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전공 분야답게 해당 소재에 대한 애정도 느껴져 상당히 탄력적으로 읽혔고 실제로 우키요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보람이 있는 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나 나에게나.

 게다가 이런 소재로도 복잡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추리소설이 탄생할 수 있음에 감탄하기도 했다. 추한 인간들의 노림수가 얼마나 비극적으로 끝맺어질 수 있는지... 전체적으로 구성이 좋아 데뷔작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작품은 나오키상 수상작인 <붉은 기억> 밖에는 없던데 좀 아쉽다. 이 작가도 만만치 않은 작간데... 혹시 기대해본다.

힘이라...... 그런 멍청한 게 이 세계에서는 중요한 거니까...... -26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