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잠든 숲 1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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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소개를 할 때 누가 자기 부모님을 존경하는 이유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점을 들어 폭소를 유발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 참 엉뚱한 친구긴 한데 사실 그렇게 포복절도할 대목은 아니었다. 느닷없긴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한때 대통령이었던 누구는 이 부분에 있어서 모두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뭐, 굳이 전 대통령을 거론할 것도 없이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확실한 건 나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을 짓는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게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일까.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포복절도한 우리들처럼.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 8번째 작품이 나왔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필두로 독일 추리소설을 흥행시킨 작가의 신작이다. 거두절미하자면 난 서구권 추리소설, 특히 독일 추리소설은 취향에 맞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공감할 수 있게끔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정말 별다른 이유가 없다. 반쯤은 정이 들어서, 또 반쯤은 의무감으로 읽었을 뿐이라고 미리 공지한다. 이 작품을 읽은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건 정말이지 내 취향에 따른 감상일 게 자명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분량도 방대해지고 등장인물도 많아졌지만 - 그 많은 인물이 정말 다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출판사의 어마어마한 푸시 덕에 시리즈의 팬이라면 감탄할 아기자기한 편집은 눈에 띄지만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여전하다. 딱 하나, 보덴슈타인의 과거사가 개입됨으로 인해 수사에 변수가 생겼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에서 주인공의 개인사가 사건에 개입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유독 서구권 추리소설에는 이런 게 극심한데 주인공에게 사건의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역할까지 부여하는 것 같아 읽을 때마다 당혹스러워 헛웃음마저 나온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주인공이 자기 스스로가 사건의 초반부터 얽혀있단 것을 아는 것과 사건 해결 말미에 도달해서야 얽혀있단 것을 깨닫는 두 가지 패턴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전자였다. 보덴슈타인이 40여년 전에 겪은 어떤 사건이 현재의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을 다시 찾아와 마주한다는 얘기는 그런대로 읽을만 했다.


 긴 시간 동안 묻어둔 공포스런 기억이 찾아오자 겁에 질려 입을 다무는 마을 사람들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보덴슈타인처럼 공과 사를 좀처럼 구분 짓지 못해 진땀 빼는 인물 역시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의 일화가 떠올랐다. 새삼스럽게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게 누군가에겐 죽기보다 어려울 수 있고 누군가는 당연히 구분하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갈팡질팡하다 이도저도 아닌 채 물러나기도 한다. 공과 사를 구분 짓자고 읽은 소설은 아니었지만 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의 노림수가 어느 정도는 적중하지 않았나 싶다. 보덴슈타인에 대한 서비스... 라 부르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 유독 이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된 건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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