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8.9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우타노 쇼고는 서점가에서 꽤 인기 있던 작가였다. 작가의 작풍을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오타쿠, 싸이코, 변태...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의 온갖 안 좋은 유형의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들 - 국내에 제일 먼저 소개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제법 이질적인 작품이었구나 싶다. - 은 그리 환영받을 만한 내용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수요가 많은 작가였고 그에 응답하듯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사실 모두가 다 안다. 우타노 쇼고가 뭘 쓰건 잘 쓰는 작가라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쓴다... 우타노 쇼고는 정말 잘 쓰는 작가가 아니던가. 본격이든 사회파든 서술 트릭이든 추리소설로는 더할 나위 없는 작품들을 써냈으며 하나같이 수준급의 몰입도를 자랑한다. 개중에는 범작도 있고 너무 막장이라 눈살 다 찌뿌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우타노 쇼고의 작품만 읽으면 이 작가는 진짜 잘 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곤 한다.


 참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이 기대 이하라서 잠시 관심을 거뒀다가 정말 오랜만에 집어든 게 바로 이 작품이다. 평점을 보면 알 수 있듯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내가 왜 우타노 쇼고를 좋아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최근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를 읽은 참이라 집단 괴롭힘 소재를 또 접하기는 거부감이 들었다. 더구나 주인공의 일기가 분량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초반 주인공의 어투가 중학생답게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경향이 있어서 이런 문장이 계속 이어지면 힘들겠다고 지레짐작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작품인데 그 점에서 작가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예상 가능하게 흘러가지만 깊이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이건 좀... 더도 덜도 말고 정말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만 든 채 통째로 삼키듯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솟구치게 만드는 한심한 아빠, 생활고에 시달려 알게 모르게 아들에게 무관심한 엄마, 존 레논에 미쳐 사는 아빠 때문에 붙혀진 이름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숀 - 존 레논의 아들 이름이 숀. 숀의 엄마 이름은 요코... 이 존 레논이라는 키워드를 이렇게 무궁무진하게 다루다니, 이건 오쿠다 히데오도 몰랐을 것이다. - 은 자신이 겪은 폭력의 일상을 '절망노트'에 적는다. 노트 전면을 '절망'이라는 글자로 도배시킨 이 절망노트는 이름에서처럼 감정의 심연을 톡톡히 선보인다. 교묘하고도 도저히 구제할 길 없어 보이는 교실에서의 괴롭힘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기분 한 번 울적하게 만드는데 폭력이 심화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커진다.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이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돌파구로써 매달리는 대상이기에 기도를 드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신들은 실존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으며 기도하는 당사자도 절박하지만 기대는 안 하기에 일종의 퍼포먼스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기도가 정말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를 집단 괴롭힘 문제에 대입해 풀어낸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단순한 발상이지만 작가 나름의 개성으로, 더욱이 필력으로 파고든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작가는 이 난제를 제대로 풀어낸다. 반전이 망쳐버리지만.


 우타노 쇼고의 진가는 반전에 있다고 하는데 이번 작품은 전개 부분이 훨씬 좋았다. 추리소설이 반전 하나만 바라본다는 야유를 듣는 반면 우타노 쇼고의 추리소설은 반전만큼이나 전개에서의 복선이나 몰입도가 탄탄하기로 정평이 났다. 이것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번 작품에선 반전이 작품을 망쳤고 반전 이전까지의 내용이 무진장 좋았기에 아쉽기 그지없었다.

 작중의 여러 반전이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놀랍긴 했지만 작품 내용과 겉돈 게 문제였다. 사회적 문제인 집단 괴롭힘 문제를 숀의 심리와 맞물려 그토록 잘 파고들었으면서 정작 풀어낸 것들을 다 내팽개치는 마무리라니... 그렇게 허무할 수 없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반전과 주제의식과 소재가 아주 잘 들어맞아서 지금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정도고 누가 추리소설 좀 추천해달라고 하면 두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이기까지 하다. 이 작품도 반전 직전까진 그 작품에 근접하게 전율하며 읽었는데 계속 말했듯 그놈의 반전 때문에...... 반전에 치중하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 진심으로 우러나온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기껏 느낀 전율이 다 가라앉았지만 한편으론 반전의 내용이 아주 무익한 통찰도 아니라서 결론적으로는 기분 나쁘게 책장을 덮거나 하진 않았다. 이다지도 어둡고 막장이지만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작가 덕분인지 결점조차도 스스로 변론하게 된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들도 다시 읽고 싶어졌다.



 p.s 제목이 <데스노트>를 연상시킨다. 나만 그런가? 어떻게 보면 비슷한 내용이기도 하...네.

그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누구도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럴 까닭이 없다.

이렇단 말은, 나는 괴롭히는 무리로 갈 수 없다는 것. 이렇단 말은, 나는 이대로 죽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도 당하지도 않는 위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두 부류밖에 없으니까. 괴롭히느냐, 괴롭힘을 당하느냐.

이상하다. 이런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 정신상태가 이상하다.

말인즉 ‘인간은 두 타입으로 나뉜다‘는 전제는 틀렸다. 틀린 방정식에 대입해서 사물을 판단해봐야 이상한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인간을 두 타입으로 분류하려고 하다니, 원. 사람의 행위라는 것은 복잡다단한 것이다. - 26p




뭔가를 손에 넣으려면 때로는 스스로가 광대가 될 줄도 알아야 해. - 5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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