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눈물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이 전하는 오키나와 '전후'제로년
메도루마 슌 지음, 안행순 옮김 / 논형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9.9







 최근에 본 영화 <분노>에서 오키나와의 문제가 주요 소재로 다뤄졌다. 문득 오키나와의 미군 문제에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오키나와는 동양의 하와이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와 유명해진 여행지일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에서 주인공네 가족이 튀는 '남쪽'도 바로 오키나와다. 4년 전에 가족끼리 여행간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마냥 좋기만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오키나와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분노>에서 받은 충격을 훨씬 능가한다.

 네이버 책에는 저자 이름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데... 저자는 <물방울>이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메도루마 슌이다. 오키나와 출생이며 오키나와의 현실을 작품 속에 풀어내는 저명한 작가이자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 오키나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아직 작가의 소설은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궁금증이 생긴다. 오키나와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이렇게나 울려 퍼진 걸 보면 작품을 보통 잘 쓴 게 아니겠구나 싶어서 말이다. 오키나와는 일본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변방이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부로부터 외면당하다시피 한 곳일 텐데.


 오키나와가 피로 점철된 땅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작가가 자신의 증조부모, 조부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들은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서술된 오키나와의 근대사는 남다른 몰입감을 자아낸다. 오키나와의 근대사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근대사와 흡사한데 - 위치나 사람들의 인식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 오키나와는 전범 국가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단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라는 이름의 별개의 나라였다. 이 말은 문화, 언어 등이 달랐던 하나의 나라를 일본이 침략해 자기 나라 영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제 강점기 시절의 우리나라처럼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얘긴데 이 과정에서 류큐인들은 일본인이 되고자 부던히 노력했다. 정작 일본의 '본토인'은 이런 류큐인들을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이나 우리나라의 '조센징'처럼 차별 어린 시선으로 대했지만... 이후 2차 세계대전 때 위치 때문에 미군과의 격전지가 된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인을 위해 입대하지만 실상은 일본군의 총알받이 신세거나 포로가 됐을 시 자결할 것을 세뇌받는 등 대우가 말이 아니었고 미군에게는 학살당하는 등 이래저래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전후 60년, 1945년에서 60년이 지난 2005년에 출간됐으며 첫 장의 내용은 '전후'라는 단어가 오키나와에 있어 얼마나 부적절한 표현인가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다. 전후라 함은 분명 전쟁이 끝난 후를 가리킬 텐데 오키나와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가 휴전 중인 것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다. 일본의 그 어떤 곳보다 미군이 많이 주둔한 오키나와는 특히 기지 주변에서 성폭행 등 갖은 문제가 여전히 속출하고 예상할 수 있듯 부조리한 판결 때문에 인권이 유린 당해왔으며 그렇다고 일본 본토에서 대우받지도 못하며 오히려 차별의 대상이라는 내용이 전개된다.

 일본 본토가 괜히 오키나와의 분노를 돌리고자 휴양지와 관광지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등 사탕만 물리려는 모습이 얼마나 속 뒤집어지는 일인지도 상세히 저술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많이 뜨끔했던 부분이다. 오키나와에 대한 기분 좋은 추억만 갖고 있는 나 역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있어 결코 환영 받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왜 오키나와가 그토록 일본에게서 독립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려고 시위를 하는지 한 번이라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땅의 역사에 무지한 채 편협한 이미지만 주목하며 수박 겉 핥는 수준의 관심만 보인 게 못내 부끄러웠다.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오키나와에 가기 며칠 전엔가 출간된 책이었는데...


 체험담과 작가의 통찰, 거기에 면밀한 자료가 뒷받침된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오키나와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만한 의식 있는 사람이 쓰는 소설은 또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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