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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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무척이나 단순한 제목의 작품은 그 나름대로 기대가 된다. 단어 하나만으로 작품이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하물며 소름이라니. 이목이 집중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이름도 어딘지 낯익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엘러리 퀸과 같이 좋아하는 미국 추리소설가라고 어디에서 읽은 것 같다.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와 비견되는 하드보일드의 대가라는 것도 들어본 것 같다.

 하드보일드는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장르는 아니다. 난 단순하게 추리소설의 하위 장르의 일종으로써 비정한 작풍과 탐정인 주인공이 두뇌만큼이나 발품을 많이 파는 동선 정도로 하드보일드를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장르 특유의 멋이나 캐릭터에 주목하며 읽는 모양이던데 이 작품을 읽고나니 하드보일드의 정수를 어느 정도 엿본 것 같다.


 처음 만나보는 작가지만 한눈에도 보통 작가가 아님이 느껴졌다. 작가의 평탄치 못한 삶이 - 작가 연보와 작품 해설에 상세히 소개됨. - 그대로 녹아들었는데 새삼 인생의 불행과 작품의 완성도 간의 상관관계가 얄궂게 다가왔다. 그게 작가가 자초했건 단순히 운이 나빴건 간에 작가의 지난 번뇌가 작품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몸소 선보였다. 시대상이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일 것이다.

 주인공 아처는 신혼 여행 중에 실종된 아내를 찾아달라는 한 남자의 의뢰를 받게 된다. 남자의 슬픔을 가볍게 넘기며 손을 거들지 않는 경찰 대신 민간 조사원이라면 얘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아처도 별로 마뜩찮지만 남자의 절박함에 등떠밀려 어딘지 의무적으로 조사에 착수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아내를 찾게 되는 아처는 실종의 이면에 잠들어 있던 살인의 연쇄를 목도하고 만다.


 나라별 문학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자주 읽는 나라의 문학을 예로 들자면 일본은 어두움, 프랑스는 똘I, 그리고 미국은 투박함이 연상된다. 이 투박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바로 하드보일드라고 생각하는데 챈들러의 말로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아처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시니컬하게 멋부린 문장이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투박하다.

 하지만 투박함에 그치지 않고 1963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기엔 너무나 요즘 일본 추리소설 같은 복잡함과 막장 또한 담기도 했다. 시간을 건너뛴 각각의 살인사건의 인과 관계는 다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붕괴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런 비극을 막고자 안 그런 척 탐정이 고군분투하는데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라기 보단 자기 손으로 지킬 수 있는 정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 어딘지 더 와 닿았다. 더 이상 정의라는 허구는 믿지 않지만 절대로 위악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은 잔인한 현실에서의 버팀목과 같은 것일 텐데 약간 매달리는 심정으로 아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따라다님이 바로 하드보일드의 매력이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제목의 느낌이 광범위해 온전히 작품을 대변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작품의 반전은 정말 소름 돋았고 그 반전을 옥죄듯 차근차근 수사망을 좁혀가는 탐정의 행보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사회파 하드보일드로 하여금 가족의 붕괴가 60년대의 미국이나 현재 우리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아 새삼 나라별 인간사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기도 했다.

 과연 노리즈키 린타로가 좋아할 만한 작가였다. 친구의 친구는 사귀기 쉽다고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는 나도 좋아지기 쉬운 법인가 싶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마냥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추리소설만 아니라 다양한 테마를 갖춘 추리소설도 소화하는 것의 원천, 이를 테면 사회상을 차용한 하드보일드적 구성 같은 것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많이 출간됐으면 좋겠는데.

인생에는 끝없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죠. -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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