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0
진 웹스터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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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흔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후원자의 관용어 정도로 익숙한 키다리 아저씨는 본래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에서 따온 것이다. 고아인 주디가 정체불명의 후원자 존 스미스에게 문장력을 인정 받아 후원을 받으면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는 내용으로 서간형식하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 작업을 거치느라 빛 바랜 감도 있겠지만 촉촉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밝게 써내려진 편지의 문체는 실로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존 스미스라는 가명인 티가 팍팍 나는 이름 대신 임의로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시작되는 주디의 편지들은 서간형식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1인칭, 3인칭, 2인칭 소설과도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다. 한 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는 말처럼 편지도 한 번 보내면 회수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카카오톡처럼 바로 바로 전달되는 시스템과 달리 편지는 내용의 길이와 깊이, 이외에도 서두, 본론, 결말까지 아우르는 등 이야기를 만드는 센스와 문장력이 있어야 비로소 풍성해진다. 생각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 써야 하는 만큼 감성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시대에 와서도 편지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 인생에서 편지를 가장 많이 써본 때는 군대에 있을 때다. 자대 시절엔 전화가 있어 쓰진 않았지만 신교대에 있을 적엔 편지지만 붙들었던 기억이 난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오직 편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쓴 편지와 받은 편지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때 느꼈던 감성이 다시 피어올랐다. 또 어렸을 때 어린이판으로 한 번 읽어본 작품인데 그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도 볼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사람마다 평가가 갈리겠지만 나는 주디의 대학 생활이야말로 - 대학보다는 고등학교에 가까운 듯하지만 100년도 더 전 얘기니 그렇겠구나 싶었다. - 이상적인 학창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부라는 단어가 흔히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듯 사람이 갑자기 부유해지면 전보다 거만해질 법도 한데 그런 기색 없이 키다리 아저씨와의 약속을 지키는 지키는 주디가 기특했다.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느라 바쁠 텐데 답장도 않는 후원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어여뻤다. 반대로 생각하면 주디에게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란 약속을 넘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창구이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데 뭐가 됐든 간에 글을 쓰는 일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님을 생각하면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대단한 일이다. 나도 키다리 아저씨처럼 주디의 편지를 받는 입장이었다면 정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지 않았을까.


 100년도 더 옛날에 발표된 작품은 지금 읽어도 감탄스러운 이상적인 여성상도 보였다. 당시엔 여성에겐 투표권도 없던 만큼 아무래도 여성의 역할이 무척 한정적이었을 텐데 소설 내용만 보면 그런 기색을 찾기 힘들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인지, 있는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가 배경이니 그 특성이 십분 반영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분명 시대를 관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구조이기도 하나 열심히 공부한 주디가 장학금을 받거나 후에 글을 통해 돈을 벌어 키다리 아저씨에게 돈을 갚으려는 모습,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고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자기가 나온 존 그리어 고아원을 인수하겠다는 구체적이고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점이 출간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작품들 덕에 후대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한 여학생의 시시콜콜한 편지들로 치부될 수도 있으나 그 안에 담긴 감성, 사랑만큼이나 영롱하게 굴러간 주디의 성장이 그 무엇보다 주목이 됐다. 당돌하리만큼 거침없이 편지를 써내려간 것처럼 결혼 이후에도 잘 지내기를. 듣자하니 후속작이 있다는데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 주디가 결혼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까 궁금하니 말이다.

"성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은혜로운 약속은 ‘가난한 자들이 항상 너희와 함께할지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동정심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유용한 가축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잖아요? 제가 어엿한 숙녀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예배가 끝나자마자 주교님께 달려가 제 생각을 말씀드렸을 거예요. - 46p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싹이 조금만 보여도 당장 짓밟아 버려요. 오로지 의무감만을 강요하지요. 전 아이들이 그런 단어의 뜻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의무감이란 불쾌하고 혐오스런 단어예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가 좋아서 해야 한다고요. - 146p




그 둘은 갓난쟁이 때부터 많은 걸 누리고 살아서 행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요.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세상이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어찌 됐든 세상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빚을 갚으려고 하는 것 같구요. 하지만 세상은 저한테는 빚진 게 아무것도 없고, 처음부터 그 사실을 분명히 밝혔죠. 전 외상으로 원하는 것을 빌릴 권리가 없어요. 언젠가는 세상이 제 요구를 거절할 날이 올 테니까요. - 213~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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