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가족놀이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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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한때 미야베 미유키란 브랜드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그 감정을 지금도 일부분이나마 가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워낙에 다작의 작가라서 모든 작품이 완성도 일정치 않은 탓이다. 국내에 출간되는 일본 추리소설들 중 히가시노 게이고와 더불어 양대산맥으로 불릴 만큼 정말 다수의 작품이 출간됐는데 그 많은 작품이 다 재밌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당장 히가시노 게이고만 하더라도 요즘 출간되는 작품들이 변변치 못하다는 얘기를 듣는 판국에 미야베 미유키라고 또 오죽할까. 그렇기에 이번에 재출간된 이 작품도 기대보단 우려가 됐다.

 2011년에 출간된 <R.P.G>가 새단장을 하고 서점가에 찾아왔다. 2011년에도, 지금에도 어딘가 시대착오적일 소재임엔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이 짧디막한 소설은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그래도 인터넷 익명 시스템 문제가 작금의 사회상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삐딱하게 바라볼 것도 없지만 작중 등장인물들이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예스러워 괜히 닭살이 돋을 정도다. 당시에 읽었더라면 또 몰라도.


 닭살이 돋느니 뭐니 했지만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사람끼리 가상의 가족을 구성하며 논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라도 소름이 돋을 법한 내용이기도 하다. 사건의 피해자가 생전에 빠져있던 인터넷 속의 가상가족놀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단란한 가정을 현실에서 못 찾은 유저들이 인터넷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가족놀이를 한다는 것은 적잖이 씁쓸한 일이지 않은가. 무척 과장된 이야기일 것 같지만 더한 일이 인터넷 속에서 판을 치는 세상을 떠올렸을 때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가 자기 스타일대로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미야베 미유키 스타일...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를 그려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다. 이 스타일 때문에 한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기를 꺼렸던 것인데... 어쩌면 일일 연속극 드라마와 같은, 마치 성선설에 입각한 듯 한없이 평화로운 인물상과 시선이 바로 그러하다. 추리소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제법 디테일하고 밀도 있게 풀어내는 게 사건의 동기에 주목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더없이 어울려 인정받게 된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이 가상가족놀이를 자신의 전매특허인 따뜻한 시선으로써 풀어낸다. 왜 이런 불가해한 놀이를 한 것일까. 당장 사건 해결에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놀이는 다중 반전으로 하여금 놀라움과 씁쓸함을 안기는데 여담이지만 긴 분량으로 압도했던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비교적 담백하고 짧게 해결을 봤다는 게 참 신선했다. 아무튼 현대인의 가족 해체라는 젠체하는 말로는 다 설명해낼 수 없을 작품 속 기현상은 우리들의 보편적 심리에 의해 정석적이면서도 진지하게 파헤쳐진다.

 나의 경우에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가족에게 불만이 적은 편이라 짐작해보는 정도지만 이 세상은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단란한 가족이 정말 그림에만 있을 것 같은 세상이라 작품의 소재가 일단 납득이 됐다. 처음엔 가족이란 관계를 굳이 놀이를 해가며 만들어야 할 특별한 관계인가 싶었는데 이건 터무니없이 얕은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만 몰랐지 꽤 복이 많은 삶이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족의 부재, 단적으로 부모의 부재에서 오는 온갖 비참함은 최근에 관람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낱낱이 볼 수 있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니 가족애에 대한 갈망이 더욱 이해가 됐다. 내가 그랬듯 자신의 기준만을 들어 타인의 가치관을 재단하는 것도 참 답이 없는 독선이라 생각하는데 그러한 행위를 바로잡아주는 면에서 작가가 제 역할을 다해준다.

 기본적으로 가상가족놀이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변호하지만 동시에 이 놀이의 본질적인 문제점도 꼬집어 인상적이었다. 혹시 놀이인 만큼 참여한 사람들이 무책임하지 않을까 하는 어림짐작이 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어림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시연하는 작품이 속시원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한때 미야베 미유키란 브랜드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착하디 착한 등장인물들이 한바탕 부둥켜 안고 눈물이라도 쏟지 않을까 싶은 감동적인 연출이나 사건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가 더할 수 없이 오그라들었던 탓이었다. 그 굴레에서 이 작품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 사실 읽으면 읽을수록 땀이 흐를 만큼 오그라든다;; - 과연 이름값 꽤 되는 사회파 추리소설가답게 사회 의식이 빛을 발해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작중의 묘사들은 예스럽지만 소재나 주제의식은 시대를 관통하는 맛이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음미할 부분이 그득했다. 적어도 작가의 이름을 빼면 볼 것 없는 그런 범작은 아니라서 참 다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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