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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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일본 추리소설계에서는 신고전주의(=르네상스)를 의미하는 '신본격'이란 말이 있다. 서구권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자취를 감춘 본격 추리소설의 고전미를 지향하면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첨가시킨 작품의 성향을 일컫는 용어인데 80년대 후반에 여러 신인들이 이런 신본격 작품을 내면서 하나의 트렌트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신본격 운동의 선두에 섰던 작가가 바로 아야츠지 유키토인데 이 작품 <십각관의 살인>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제목을 워낙에 많이 들어서 읽지 않았음에도 익숙한 작품이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에서도 언급되고 당대 추리소설가, 현재의 추리소설가들한테도 전설적인 작품으로 꼽히나 본데 그 진면목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기차를 오랜 시간 탈 일이 있었는데 기차에는 뭐니뭐니 해도 본격 추리소설이란 생각에 가져가봤다.


 외딴 섬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 연쇄 살인을 다룬 대놓고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많이 오마주했는데 팬심이랄지 풋풋함이랄지 이런 오만가지 것들이 중첩돼서 피식거리며 읽게 된다. 십각형으로 된 저택, 외부와 단절된 섬,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기묘한 건축가의 이야기 등 분위기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는데... 까놓고 말하면 작가의 미숙함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당시의 경향을 생각하면 확실히 대담하고 재기 넘치는 작풍이긴 했다. 등장인물들이 추리소설을 동경해 황금기의 추리소설가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삼질 않나 추리소설의 미학에 대한 의견이 오가질 않나 적당히 마니악하면서도 진지한 구석도 있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추리소설적 기교를 놓고 봤을 때 매력적인 분위기가 무색하게 사건의 전개나 캐릭터의 매력, 반전 등이 다소 긴장감이 부족하고 느닷없으며 복선은 미비해서 사뭇 놀라운 반전마저도 퇴색된 경향이 있다. 더구나 캐릭터를 너무 소모적으로 등장시키고 범인의 동기를 설명하는 부분도 세련되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추리소설의 단점이 잘 부각되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인 나카무라 세이지의 존재감이나 전형적이지 않은 탐정의 활약이 오히려 소설 본편보다 신선하고 - 이런 굴욕이 있을 수가. - 재밌었다. 평단과 팬들 사이에서도 저택물치곤 물리 트릭 외의 요소로 승부를 보는 이상한 시리즈라고 얘기하던데 나 또한 그들이 느낀 배신감에 동의한다. 이런 걸 보면 신본격의 특성이 한 번에 이해되기는 했다. 신본격이 뭔지를 물으면 이 작품을 권해도 괜찮을 듯하다. 나라면 이 작품 말고 다른, 이를테면 더 재밌는 작품을 권하겠지만.

 아야츠지 유키토나 '관'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처음에 읽은 <미로관의 살인>은 정말 괜찮았는데 다른 작품은 나랑 영 안 맞는 것 같다. 그래도 개성만큼은 확실한데 개인적으로 뭔가 되다 만 느낌이 들어서... 이 작가의 작품을 앞으로 또 읽을 날이 올라나?

나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우는 탐정 따위는 꼴도 보기 싫어. -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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