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7.7





 내가 아직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많이 못 읽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누군가가 갈수록 이 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얘길 하던데 조금씩 공감이 가려고 한다. 적어도 이 작품에 한해서는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거참, 당신도야?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접하면 분량에 상관없는 방대한 내용과 소재에 감탄한다. 이번만 해도 손오공과 서유기, 엑소시스트, 히키코모리 등 범상치 않은 소재들이 범상치 않은 연결 고리로 묶여 등장한다. 요는 바로 이 연결 고리에 있다. 이사카 코타로는 이에 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솜씨와 센스를 지녔기에 이 많은 소재들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지 한껏 기대가 됐다. 이번 연결 고리는 바로 인과관계였다.


 개개의 요소들을 보면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손오공 이야기나 엑소시스트 이야기는 영 별로였지만 이가라시가 주축이 되는 이야기는 더없이 재밌었다. 이유의 이유의 이유를 집요하게 밝히는 괴인의 행동거지는 분명 읽는 맛이 있었던 것이다. 통상적인 이사카 코타로의 엉뚱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유쾌하고 궁금한 맛이 있었다. 인과관계라는 것, 그 한없이 이어지는 연결 고리는 평상시 우리들도 자주 나누곤 하는 얘깃거리라서 이 작가가 어떻게 풀지 기대도 된 것이다. 그 부분은 나름 충족됐다. 이 작가의 집요함에서 비롯된 탁견은 그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니까.

 다만 이를 한 곳에 모아 정리하는 게 별로였다. 나름 작가답게 퍼즐식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쾌감이 덜했다. 어찌 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이야기 구조와 근간이 단순한데 비해 너무 형이상학적인 수사로 채색이 돼서 이해와 몰입이 저해된 것이다. 의미 부여...라고 하면 섭섭하긴 하지만 너무 '소설 만들기'에 집착한 나머지 과해지지 않았나 싶다. 원래 이 작가 작품은 그런 맛에 읽는 것이지만 이번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작가의 작품 중에 읽은 것도 많고 읽고 싶은 것도 많고 그만큼 실망한 적도 많으니 대세엔 지장이 없지만 신작일수록 만족감이 덜할 것 같아 살짝 불안하다.

바람피운 남자가 그 여자가 나를 유혹했다, 그 여자는 악마다, 그런 말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수비가 약한 축구팀이 대량 실점을 해놓고 상대 팀의 공격이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 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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