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한 날들에게
마이클 킴볼 지음, 김현철 옮김 / 갤리온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8.2





 저번 학기 때 자신의 일대기를 쓰는 과제를 해본 적이 있다. 무척이나 어려웠다. 처음엔 왜 쓰란 건지도 모르겠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막상 써내려가니 자꾸 떠오르는 게 많아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다 행복했던 기억 뿐이라면 좋았겠지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위 '흑역사'라 불릴 것도 많았고 무덤 속에 같이 안고 들어갈 것도 많아서... 아무튼 그렇게 내 일대기를 쓰다 보니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소설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끔 한 인물의 일대기를 쓰는 소설이 있는데 소설로서의 몰입도나 흥미는 조금 떨어져도 - 대게 이런 전개는 그 인물의 미래를 독자에게 이미 보여준 경우에 펼쳐지더라. - 사람의 마음을 참 먹먹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게다가 작가의 노고도 대단하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누군가의 삶을 그린다는 것은 빈말로라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게 어쩌면 더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의 조너선이 실제 작가의 분신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쓴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 기상 캐스터 조너선이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일대기를 남겼다. 그걸 동생인 로버트가 읽어나가는 내용인데 제목에서 말하듯 우울했다. 우울한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는데 그 말을 단적으로 증명하니 말이다. 피임의 실패로 태어난 조너선이 아버지의 냉대, 폭력과 가정의 불화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는 걸 더없이 잘 보여주기까지 한다.

 엄밀히 말해 조너선의 연대기는 디테일하고 감수성 풍부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면 읽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결말은 정해진 이야기이고 어느 정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등 강약 조절은 하고 있지만 작풍은 시종 구름이 껴있다. 치우친 발언일 수는 있지만 정말 '일본인 못지 않게' 감성적이라서 조금이라도 이야기에 몰입이 안 된다면 겉돌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재밌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와닿는 작품이었다. 우울함과 외로움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고 가정하고서 말하건대 이 소설은 그런 마음을 잘 어루만진다. 일대기 형식을 통해 그 근원을 가족과 환경에서 찾은 것도 익숙하지만 진중한 접근이었다.

 누군가의 일생을 엿본다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힘들게 썼듯이 누군가도 힘들게 썼을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의 경우에는 창작이었지만 어지간한 일대기 못지않은 깊이가 있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을 맞이한 한 인물의 일생을 짧게나마 접하는 것은 역시 울림을 준다.


 감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가끔은 아닌 경우도 있다. 내가 내 일대기 작성을 일단 어느 정도 끝마쳤을 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말마따나 한 사람의 인생 또한 우주에 가깝기에 그를 돌아보는 것에는 경이로움이 뒤따른다. 이 경험은 쉽지도 않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