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9.4






 우리나라 역사 중에 슬픔의 의미가 절대로 퇴색되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 몇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비극으론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이 꼽히겠고 일제 강점기의 치욕은 지금까지도 옆 나라가 사과를 하지 않는 통에 슬픔이 가실 길이 없다. 내가 이번에 읽은 작품은 5월을 '슬픔의 달'이라고 불리게 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소설이다.

 어, 솔직히 말하면 80년대에 벌어진 이 사건은 그 십 년도 뒤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서 있어서는 '약간 지난' 축에 드는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삼풍 백화점이나 성수 대교 붕괴, IMF 등 엄청난 사건이 있었고 또 사건의 당사자가 이제는 일선(현장? 어떻게 표현해도 의미가 좀... 어쨌든) 물러나서 크게 와닿지 않았고 교과서에서만 접하는 사건 정도로 이해될 뿐이었다. 더군다나 광주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사건의 비참함을 짐작하기가 약간 어색한 감도 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에 나는 작품에게 꽤나 큰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주인공이 자신의 친누나를 추억하는 이 짧은 성장 소설은 분량이나 주인공의 한정된 시각 탓에 광주 민주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들여다봤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이것만 해도 나의 무관심했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초반에 주인공의 동급생 두 명이 치고 박고 싸운 걸 갖고 담임의 대처를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성과 의의에 연동시켜 풀어낸 것은 대단한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선뜻 그 의미를 전달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쓰니 대번에 이해가 됐다. 또한 청소년 소설로서도 청소년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와 사고에 맞게, 한마디로 살아숨쉬는 것 같은 역동적인 캐릭터를 내세웠는데 청소년 소설이 흔히 범하고 마는 오글거림이나 현실과의 부조화는 느껴지지 않아서 참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 짧은 분량과 주인공의 연령대다. 분량이 200쪽도 안 되는데 누나와의 추억을 어린 시절부터 되새기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이 정도 필력이면 충분히 더 쓰고도 남았을 텐데 너무 금방, 느닷없이 끝나서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가뜩이나 이야기도 주인공이 너무 어려서 운동의 실질적인 여파가 그렇게 많이 체험하지 못했기에 더 내밀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말이다.

 기획 취지는 상당히 좋았고 이야기도 저자의 필력이 상당해서 이야기 속에 부족함 없이 빨려 들어갈 수 있었으나 복선 없이 금세 당도한 결말, 그리고 취지가 무색되리만큼 주인공의 운동과 딱히 상관없는 추억 회상에 공들인(그 자체로는 매우 좋았지만) 탓에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그렇다 해도 너무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에 국한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서글픔과 아픔을 잘 전달한 이야기라는 것엔 틀림없다. 그래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상을 받은 채, 오히려 작품 속에선 묘사가 부족했던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배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배운 사람들이 더 무서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너희들처럼 배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 15~16p




민주주의를 우선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런 사회를 만든다면 이 민주 묘역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그렇다. 광주의 오월, 이 오월이 슬픔으로 남느냐, 아니면 명예의 훈장이 되느냐는 바로 여러분들에게 달렸다. 선생님은 믿고 있다. 10년, 20년 뒤 여러분이 성인이 되었을 즈음이면 이 묘역은 반드시 영광의 성지가 되라라는 것을..... - 42~4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