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의 알타이르 27 - 완결
카토 코토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9.7

전쟁과 전쟁을 하고 있으니까. - 3권 11fasil 중

굴하지마라. 틀렸다 해도 누가 뭐라고 해도 네 스스로 그쪽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거니까... - 6권 30fasil

이 작품은 반전 만화다. 10권 이후부터 펼쳐지는 르메리아나 대전이 작품의 메인이긴 하지만 오히려 작품의 백미는 그 전쟁을 막기 위해 주인공 마흐무트가 동분서주하던 이전 파트에 있었다. 조국이나 적국이나 전쟁을 일으키려고 안달인 자들의 손과 발을 묶고, 궤변을 내세우며 전쟁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의 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틀어막는다. 지혜로운 계책과 보다 우수한 전법으로 가급적 피를 덜 흘리는 방식으로.

이처럼 전쟁과 전쟁을 하려는 이들의 고군분투는 끝내 양국 정상의 확고한 전쟁 의지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초반에 마흐무트가 주변 소국들과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닌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며 물밑 작업을 한 덕분에 전쟁 중이나 전후에 톡톡히 보상을 받는다. 당장 눈앞에 승리나 복수에 눈이 멀어 근시안적인 정책과 망언을 내놓은 루이와 자가노스가 대가를 치르게 된 것과 달리 마흐무트는 승승장구한다.

첫 화에서 전쟁이냐, 아니냐는 선택지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양자택일의 상황이 주어지는 현실이 문제라고 주장한 마흐무트는 장군들한테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애송이라 면박을 당한다. 그런데 정작 전쟁에서 장기적인 성과를 올린 것은 오직 마흐무트뿐이다. 그가 탁월한 무력과 지략을 갖춘 장군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단 마흐무트가 각 나라가 서로 평화로운 균형을 깨뜨리지 못하도록 판을 짠 덕분이라 봐야 한다. 그가 구축한 체제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믿고 주장한 바를 실현한 마흐무트의 행동력과 실행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나면 적든 많든 사람이 죽어나가지. 그러니까 앞으로 지휘관에겐 싸움에 임하는 부하들이 적어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재능도 필요하단 얘기야. - 8권 36fasil 중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사람은 언제든 인생에 감사하며 죽을 수 있는 거야. 인생에 감사하며 죽다니, 그보다 더 '행복한 결말'이 어디 있겠어? 천상에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 14권 75fasil 중

작중 전쟁은 일찍이건 나중이건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다. 벌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벌어질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해 병사들은 무를 갈고 닦고, 장군들은 병사들이 유사시에 언제든 망설이 없이 목숨 바쳐 나라를 수호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비단 전쟁 중인 병사나 장군만이 아니라 유언조차 못 남기고 개죽음을 당하는 이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조국을 위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약탈하고 유린하도록 조장한 정치인들이 친우한테 배신당하거나 근친간의 살인마저 강요당하는 등 비정한 운명에 놓이는 경우도 적잖이 그려진다. 반대로 인정에 휘둘려 과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은 무능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남의 뒤통수를 치고 자비를 보이지 않는 것이 곧 미덕으로 여겨지는, 실로 개탄스런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는 세계관이다. 물론 오늘날 우리네 세상에도 장소 불문하고 저런 사고방식이 도리어 박수를 받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 작품에선 그러한 사고방식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또 너무나 연속적으로 이어지기에 읽으면서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은 일으키지 않는 것이 상책이자 '행복한 결말'이건만... 저쪽에서 전쟁을 걸었으니 이쪽도 치자고 주장하기보단, 아예 저쪽이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못 하게끔 정치나 경제, 아니면 제도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쟁을 야기하는 근원을 없애자던 마흐무트가 진정 명군이었다.

재앙이 되고 말았군. - 14권 74fasil 중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것보다, 아버지의 긍지를 빼앗은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 SONfasil 중

왜냐하면 온갖 명분과 미사여구를 갖다붙인 들 전쟁은 결국 재앙일 뿐이니까.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고 해도, 전쟁 때나 미덕으로 여겨지던 사고방식으론 전쟁 이후의 혼란스런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 마흐무트가 없었다면 루이나 자가노스의 섣부르고 근시안적인 정책에 의해 머잖아 피비린내 나는 재앙의 악순환에 빠졌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작품은 호불호 갈리는 그림체와 똥폼을 잡으며 대사를 치는 캐릭터들, 또 몇몇 상식과 개연성에 어긋나 보이는 전쟁 묘사, 그리고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작가의 전쟁관 때문에 여러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일단 그림체와 똥폼 잡는 캐릭터부터. 이 점은 나도 인정하는데 등장인물 모두 개성적이고 비중을 막론하고 존재감도 확실해 극에 활력을 더해줘 이야기가 지겨워질 틈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개중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인물도 있어 상당한 여운을 선사하기까지 해 작가의 깊이 있는 연출력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전쟁 묘사는 깊이 파고들수록 엉성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지만 내가 그쪽에 박식하지도 않거니와 작가도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연출했기에 작품을 살펴봄에 있어 그리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가령 대포가 총보다 나중에 개발됐다거나 지휘관 한 명이 죽자 군단이 와해된다거나... 가만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그래도 옥의 티에 불과했다.

<진격의 거인>도 그랬듯 전쟁을 다루는 일본 창작물은 통과 의례처럼 작가의 전쟁관이 의심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내 눈엔 작가가 전범 국가의 후손다운 논란 어린 전쟁관을 작품에서 드러냈다고 의심되는 장면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루이와 자가노스의 발언만 놓고 보면 그렇게 의심해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마흐무트의 정책으로 인해 그들의 가치관이 부정당하면서 끝나는 작품이잖은가.

이건 아무래도 작품이 장기 연재에 돌입하고 또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탓에 완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생긴 오해인 것 같다. 1권부터 27권까지 한 번에 쭉 몰아서 읽으면 오해할 일도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가가 그림에 진심인지 모리 카오루 못지않게 공을 들였던데, 완결하는 데에 자그마치 17년씩이나 걸린 것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작품 후반부에 전후의 혼란스런 투르키에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서 이 작가가 얼마나 전쟁과 평화에 대해 열심히 고뇌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한 번에 알아듣기에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결국에 중요한 것은 하나다. 아버지의 목숨보다 긍지가 빼앗긴 것에 앙심을 품었다는 자가노스의 말처럼 우리 인간에게 있어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긍지다. 그런데 전쟁은 목숨뿐 아니라 긍지를 저버리게 만든다.

긍지를 잃은 사람들은 미래까지 잃고 만다. 작중 발트라인이 그랬고 투르키에도 그럴 뻔했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전쟁할 대상이란 오로지 전쟁밖에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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