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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선라이즈 에디션)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평점 :
8.8
스포일러 없음
히가시노 게이고의 101번째 저서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 최신작인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를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0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작품마다 완성도에 기복이 있는 편이지만 '가가 형사' 시리즈만큼은 공들여 집필하는지 항상 믿고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작가에게 본격적으로 빠져든 작품도 이 시리즈의 <붉은 손가락>이다.
작가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붉은 손가락>,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부터 부쩍 휴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많이 발표하곤 했다. 휴머니즘이 가미되는 것을 두고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품들이 등장인물과 소재만 바뀔 뿐 정형화되는 느낌을 받아서 그의 작풍 변화가 내심 불만스러웠다. 그렇기에 이번에 읽은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의 클래식한 만듦새가 제법 신선했다. 클래식한데 신선하다니, LP를 새로운 물건으로 여기는 신세대가 이런 느낌이려나?
제목만 보면 같은 시리즈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내가 그를 죽였다>와 동일 선상의 작품이란 인상을 주지만 이 작품은 앞선 두 작품처럼 실험적이지도 발칙하지도 않다. 다행히 범인을 밝히는 몫을 독자에게 넘기지 않으며 작중 미스터리의 전말도 깔끔하게 밝혀내고 끝낸다.
다만 대놓고 후속작을 암시하며 끝낸 결말은 불호였다. 찾아보니 일본에 <누군가가 나를 죽였다>란 제목의 오디오북이 출간됐다는데 아마 그 작품은 이 작품의 찝찝한 결말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작가가 별세한 이 시점에선 그 작품이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니 빠른 시일 안에 국내에 출간되길 희망한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은 못 참지.
사실 이 작품에서 가가의 역할은 꼭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가가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거니와 다른 베테랑 형사나 탐정이 사건 해부를 집도했더라도 작품을 진행함에 전혀 지장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차근차근 이야길 풀어나가며 사려 깊은 성미의 소유자지만 일체의 거짓을 허용치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가가의 카리스마는 분명 반가웠지만 이전 출연작들의 존재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 떠나보낸 가가를 이 작품에 느닷없이 복귀시킴으로써 발생한 아쉬움이리라.
가가 특유의 빈틈없고 날카로운 추리는 여전했고, 또 많고 많은 캐릭터를 헷갈리지 않게 개성과 역할을 부여한 작가의 능숙한 필력이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양상도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는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간만에 집필한 클래식 추리소설이란 의의를 제외하면 솔직히 그렇게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다. 자수한 범인의 공범을 피해자들의 유가족 사이에서 찾아낸다는 전개는 흥미진진했지만 이후에 밝혀진 진범의 동기가 다소 부조리하고 뜬금없던 탓이다.
본래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추리소설이 아닌 범인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질러야 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추리소설도 충분히 스릴 넘치고 뛰어난 완성도를 갖출 수 있음을 20년 넘게 증명해온 작가다. 때문에 범인의 맥 빠지는 동기가 유독 실책으로 느껴졌다. 현실에서야 이보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연쇄살인을 계획하는 인면수심의 작자들이 많고 그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는 소설 역시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혀 그런 낌새 없이 진행되다가 논리성과 의외성만으로 너무 난감한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해버린다. 그래서 동기가 급조된 느낌이 없잖았으며 읽는 입장에서도 맥이 다 빠졌다.
때문에 이 후유증을 후속작을 읽으면서 달래고 싶었는데... 언제나 돼야 국내에 소개가 되려나? 그 작품도 이 작품과 비슷한 결로 집필됐을지, 아니면 반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을지 궁금한데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이 작품보단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작가의 작품을 한두 권 접한 것이 아니다 보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마무리였는데, 그래도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다음 이야기가 딱 한 편밖에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 서글픔을 다른 '가가 형사' 시리즈의 작품으로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