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퍼레이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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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고했다는 비보를 접하고서 이 책을 읽었다. 아쉽게도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중 가장 별로였다.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는 어떨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17살에 처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접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독서의 재미를 깨달았다. 그때부터 6개월간 그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때도 이미 국내에 많은 책이 소개돼 있었다. 그러다 다른 일본 추리소설도 궁금해졌고, 차츰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노르웨이의 추리소설도 읽다가 어느샌가 추리소설이 아닌 소설도 읽게 됐다.

자연히 학교도 그쪽으로 가게 됐다.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곳 중 오직 문예창작과만 보였다. 동기들과 달리 강의 때 나만 추리소설을 써서 발표했고 중간/기말 레포트에도 추리소설을 제출했다. 반응은 괜찮았고 나는 장차 추리소설가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이 부족했는지 재능이 없었던 것인지 운이 없었을 뿐인지 도전했던 공모전에선 모두 낙방했고 지금은 추리소설가가 되고자 꿈꿨던 시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내가 추구했던 추리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처럼 인간미 넘치고 진지한 추리소설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악의>, <백야행>, <편지>, <레몬>, <아내를 사랑한 여자> 등등... 이중엔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도 있지만 결은 비슷하다.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무엇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술술 읽히기까지 한다. 일부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를 가볍다 못해 소모적이라고, 전형적으로 대중적인 소설만 쓰는 사람의 문체라고 깐다. 하지만 이는 관점의 차이에 따른 발언이다. 아바나 카펜터스의 곡들이 편하게 스며든다고 해서 가볍지 않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도 결코 가볍거나 소모적이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시작으로 그의 작가로서의 창의력과 기민함이 서서히 줄어들고 점점 자신의 작품에 대중적으로 먹히는 공식을 패턴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소설들은 두세 번 반복하여 읽어도 감동이 여전하지만 요새 새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전혀 그런 느낌을 안겨주지 못했다. 거기다 작가의 이름값 때문에 나오는 신작마다 비싸긴 더럽게 비싸 반감만 더 커졌다.

내게 있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소울 푸드다. 허나 삼시 세끼를 소울 푸드로만 해결할 순 없는 노릇이다. 가령 내 소울 푸드는 마파두부덮밥이지만 많이 먹어야 달에 한두 번 먹는 정도다. 중국 음식이나 두부가 주재료인 음식도 마찬가지로 엄청 좋아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주 먹는 편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그렇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7년 전 그의 작품들만 반 년 가까이 탐독했던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독서 경험과 취향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난다. 작가가 안겨준 감동은 내 가슴 한편에 소중히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나오는 작품들까지 다 좋게 보일 만큼 콩깍지가 씌인 상태는 아니다.

나는 지금 한국 나이로 서른 넷이고 인생의 딱 절반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 함께 살아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건, 군복무 시절에도, 출퇴근 중에도 그의 책을 몇 권은 읽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포르투갈에 살 때를 제외하고 그의 책은, 그의 생각과 인간미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작가는 영면에 들었다... 17살 때 참고서를 사러 동네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띈 그의 <흑소소설>을 충동적으로 사서 읽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까지도 책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상상조차 하기 싫을 만큼 무서운 일이다. 정말 작가에겐 두고두고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 부디 그곳에선 평안히 계시길 바라 마지않는다.

<침묵의 퍼레이드> 얘기를 더 하자면,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 느슨했고 캐릭터들이 어딘가 다들 평면적이어서 그런지 막판에 나온 반전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사적 제재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내막은 예상과 달랐다는 전개도 식상했다. 시리즈 특유의 과학 기술이 접목된 트릭 역시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거기다 과학을 범죄에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고찰은, 나아가 과학의 의의에 관한 통찰과 성찰은 전편 <금단의 마술>에서 정점을 찍었기에 상대적으로 <침묵의 퍼레이드>는 모자라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작중에 언급되는 퍼레이드가 영화에서 어떻게 구현됐을지 궁금해서 찾아볼 생각이다. 일본에서 고평가를 받았다는데도 볼 수 있는 경로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집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작가의 책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가 남아있다. 평가가 무지하게 좋던데, <침묵의 퍼레이드>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좋았기에 그 점 하나만으론 그렇게 기대되지 않는다. 내가 그 작품을 기대하는 이유는 바로 '가가 형사' 시리즈의 최신작이기 때문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독서에 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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