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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st Anniversary down 아이실드 21 BRAIN×BRAVE
무라타 유스케 지음, 이나가키 리이치로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7월
평점 :
8.1
작품 첫 연재 21주년을 기념하며 나온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됐다. 동료 만화가들의 축전(+그림), <블루 록> 만화가들과의 대담, 그리고 대망의 스페셜 만화다. 오다 에이이치로나 이사야마 하지메 등 너무나 유명한 만화가들의 축전엔 전율이 느껴졌으며 스페셜 만화도 볼 만했는데 만화가들끼리의 대담은 별로였다. 아무래도 내가 <블루 록>을 읽지 않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편집 자체가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일단 글씨가 너무 작았는걸.
무엇보다 <아이실드21>의 비하인드 스토리만 온전히 접하고 싶었던 내 기대와 어긋나는 내용의 대담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사실상 대담 부분은 아예 건너뛰어도 상관없을 정도다. 아무튼 스페셜 만화를 이야기하자면, 최근에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본 직후여서 그랬는지 이 작품에서의 AI를 비롯한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 대한 고찰이 특히 흥미로웠다. <아이실드21>이 넘을 수 없는 재능에 도전하는 범인들의 사투를 스포츠 만화였던 만큼 과학 기술에 의해 선수들의 능력이 수치화돼 잠재력까지 사전에 파악당하는 작중 설정은 상당히 착잡하게 다가왔다. 아니, 설정이 아니지. 엄연히 실재하는 기술이고 스페셜 만화에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작품 속에 반영시켰을 뿐이다.
냉정히 말해 가격 대비 컨텐츠는 많이 부실한 책이었다. 허나 21주년을 기념한답시고 세나의 런과 히루마의 기발한 트릭 플레이를 펼치는 식의 추억팔이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 기존 주제의식을 잇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정상 내지는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발버둥에 대한 찬가로 들려 약간 뭉클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이번 스페셜 만화를 통해 시기적절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나 싶다. 과학 기술에 길들여진 인간의 미래는 이미 정해졌다며 여겨지는 요즘에, 그래도 인간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정말 뜨겁고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없는 걸 갖고 한탄할 여유따윈 없다, 갖고 있는 것만으로 최강의 전법을 찾아 발버둥쳐야 하니까. 작중에서 히루마가 한 대사인데, 그는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의 신체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높은 지력으로 과학으로 측정 불가능한 잠재력을 시합마다 선보인 바 있어 무게감 있게 들리는 대사다.
미식 축구라는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로, 축구나 농구와 달리 각 포진션별로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부분을 들 수 있겠다. 말인즉슨 반드시 만능 선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갈고 닦았다면 충분히 시합에서 활약할 수 있음을 작중에선 주기적으로 강조해왔다. 물론 만화적 허용으로 캐릭터들의 능력치가 너무 극단적이긴 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실제로 작중에서 꾸준하게 어필해 노력과 열정을 추구하는 소년 만화의 본분을 다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다소 생소한 스포츠인 미식 축구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대폭 줄여준 공로가 있어 완독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떠오르곤 하는 작품이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았던 책이라 팬으로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이 작품을 처음 접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반가웠다. 그렇기에 컨텐츠는 부실하지만 읽으면서 애정이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