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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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 - 218p


 타인에 비해 운이 지지리도 없는 등장인물에게 던지는 위의 말은 안타깝게도 이 작품엔 해당되지 않았다. 너무나 뛰어난 전작들, 특히 <마리아비틀>의 생존자 나나오가 등장하는 이상 더더욱 두 작품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사유의 농도와 전개의 양상과 반전, 각기 다른 매력의 킬러들의 분투도 적어도 <마리아비틀>과 비교하면 한 수 아래로 보였다. 심지어 분량마저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작정하고 써내려간 대작인 전작에 비해 <트리플 세븐>은 전작의 인기에 기댄, 정확히는 전작이 영화화된 것에 삘을 받은 작가가 노래 가사 흥얼거리듯 써내려간 느낌이었다. 가령 이누이의 정체에 관한 반전은 이누이란 캐릭터가 존재감이 미묘해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6인조는 각자 개성이나 비중이 6등분으로 쪼개져 퇴장당할 때나 퇴장당할 때의 연출도 어딘지 시시했고 담요와 베개, 그리고 소다의 활약도 기대했던 것보다 저조했으며 무엇보다 상황에 딱히 변수를 주지 못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벼운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읽을 당시엔 몰입도가 좋았고 결말엔 여운도 있었다. <마리아비틀>에 비해 순조롭게 해결된 편인 지라 해피엔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산뜻한 결말이라 마음에 들었다. 나나오와 적대하는 킬러들도 매력이 후달려서 그렇지 격투 장면은 박진감 넘쳤고 지루해지려고 하면 펼쳐져 페이지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물론 작가 특유의 통찰과 철학 역시 건재했는데, 운에 기대지 않는 철저한 계산과 불운한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한 인물의 집념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혔다. 스포일러 발언일 수 있는데 <도둑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무튼 연출이 미묘해서 그렇지 적어도 주제의식과 그걸 풀어낸 작가의 필력은 여전히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보아하니 시리즈의 후속작이 계속 나올 듯한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으니 다음엔 조금 더 공을 들여서 작정하고 집필해주길 바란다. 여러모로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재등장해줘서 반가웠던 만큼 시리즈가 이대로 끝나길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괜히 잘못 건드려서 안 쓰느니만도 못한 결과는 제발 만들진 말고. 인생과 마찬가지로 소설엔 잭팟이 없잖은가. 운에 기대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소설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되새기며 부디 더 멋진 작품으로 돌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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