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8.0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 자기 삶의 건조함과 만나는 건 언제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생의 의미를 찾아 멀리 떠날 것까진 없다. 의미는 사무실 소파 아래에 뒹구는 막걸리 통에도 얼마든지 있다. 의미를 몰라 인생이 건조해지는 건 아니다. - 12p


 12년 전에 읽었을 때 무려 10점 만점을 줬지만 다시 읽으니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으로 올해 여름에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결이 비슷하다. 대필 작가인 주인공에겐 여러 사건이 벌어질 듯하다가도 불발로 그치고, 때론 사별한 아내나 반려견과의 추억 그리고 회한과 속절없이 마주하거나, 대필 작가로서의 직업적 고충과 사명감 등 이모저모를 서술하며 독자에게 적잖은 흥미를 안겨주면서 주인공의 사무실 주변 동네의 풍경이 묘사돼 전에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한 마디로 매력을 특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맛으로 넘쳐나는 작품이다. 아, 멋부리지 않았지만 촌철살인인 작가의 문장력만은 모두가 인정하는 이 작품의 매력일 듯하다.

 아마 요즘처럼 일상의 소중함이 위협받는 시국이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포스팅을 쓰는 일도 없었을지 모를 작품이란 생각도 든다. 일상의 사사로운 고민과 먹고 사는 문제, 장래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착잡한 와중에 시국마저 저 모양이니 일생의 즐거움조차 향유하기 눈치 보이는 요상스런 세상이 되고 만 느낌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한심한 눈초리를 받는 분위기는 예전보다 덜해졌지만 상황이 전례가 없는 만큼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이거 참 어찌 될는지. 세상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곳이라는, 작품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감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이게 작품의 문제는 아니고 나의 자격지심 내지는 세상의, 혹은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그리고 그 장본인을 믿고 뽑은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지. 닭과 달걀의 문제,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는구만. 자업자득이란 말은 너무 지독한 자학 같으니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가져갈 수만 있다면 사치는 가져가는 게 좋다.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준다. - 18p

사람은 자기가 걸어 다니는 동네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비열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개인들이다. - 19p

소설 되는 사람 있고, 소설 안 되는 사람 있고, 그러면 소설이 잘못된 거지 그 인생이 잘못된 거겠냐고. - 35p

절망까지 들여다보는 노련한 수사관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노련함이 아니라 믿음일 것이다. 진실은 믿는 것이지 밝혀서 아는 게 아니다. - 98p

운명은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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