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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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기욤 뮈소의 모든 작품을 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작품에 한해선 가장 인상적이고 여운이 짙은 작품이다. 결말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달라 통속적인 소재와 언제 읽어도 구린 표현력, 불필요한 장면 등 거슬리는 점이 많았음에도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작가가 데뷔작에 이어서 쓴 두 번째 작품으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맨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통찰이 깃든 덕분에 이런 남다른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가의 단점은 고스란히 있어서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긴 애매하다. 가령 네이선이 자신을 협박하는 남자를 떨쳐내는 장면이라든가 캔디스를 구하기 위해 접근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유치하기 그지없어 과연 이 사람에게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불러도 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망설여질 정도다. 이 작가의 문체가 '영상 같은 묘사 방식'으로 주로 수식되곤 하는데 내가 봤을 때 이런 수식어는 문장력이 떨어지는 소설가한테 붙여지는 일종의 조롱이라 생각한다. 소설엔 소설다운 영상엔 영상다운 표현 방식이 있고 각 분야가 다른 분야의 형식을 지나치게 쫓으면 졸작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 나도 내 말이 좀 가혹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듣자하니 기욤 뮈소는 여전히 1년에 한 권씩 꾸준히 신간을 집필하고 있다는데, 이 작가는 그럼에도 독자들 사이에서 '처음 읽은 작품이 가장 좋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것도 다작을 하는 소설가에게 그리 좋은 얘기는 아닌 듯하다. 쉽진 않겠지만 신작이 제일 좋아야지, 처음 읽은 작품이 좋았다는 건 결국 자가복제라는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내 경우는 어떨까? 나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기욤 뮈소를 처음 접했지만 이 작품 <그 후에>가 더 좋다. 의사이자 메신저인 가렛 굿리치의 캐릭터성이 마음에 들어서, 죽음에 대해 책임감 있게 얘기하는 작가의 태도가 생각 이상으로 진지해서, 그리고 그 주제의식이 녹아있는 반전이 굉장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일단 쓴소리 먼저 하겠다. 난 이 작품이 출판사의 광고처럼 <식스 센스> 수준의 반전을 선보였다는 말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복선이 부족해 뜬금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과 출판사의 호들갑만 빼면 참 좋은 반전이라 생각한다. 반전이란 주인공의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해야 좋은 반전이란 말이 있는데 이 작품의 반전이 그 말에 제대로 해당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자기 삶의 실수와 매듭을 풀어낸 네이선에게 닥친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열린 결말로 처리한 작가의 선택은 숱한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갤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슬프고 비정한 결말이지만 그래서 로맨스라는 본작품의 성격을 극대화시키지 않았는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로맨스는 해피엔딩보단 새드엔딩인 편이 더 명작으로 남는 것 같다.

 불필요하고 반복적인 장면과 과거 회상은 덜어내 분량을 줄이고, 특히 초반부의 지루한 진입장벽만 낮춘다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물론 이대로도 괜찮은 작품이다. 나는 많이 투덜거리긴 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조차 사랑할 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나 역시 사경을 헤매본 경험이 있었더라면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고. 작품이란 건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면 독자마다 감상이 통일되지 않고 갑론을박을 낳기 마련이다. 난 <그 후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란 반열에 든, 그야말로 기욤 뮈소의 대표작이라 본다. 작가도 실제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란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까? 신작으로. 갑자기 이 작가의 신작들이 궁금해지는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의사로서 절망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은......저 환자들을 낫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을 느끼는지를 묻고 있는 거요?
아니, 도리어 그 반대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의욕이 생기지. 병을 낫게 할 수 없다고 치료를 못하는 건 아니오.(중략) 우리는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에 동행이 되어 주는 일을 하고 있소. 사람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는 것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에 동반자가 되어주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 103~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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