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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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최근 헨닝 망켈의 작품을 읽고 북유럽 추리소설에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몇 권 더 읽어볼까 찾아보던 중 북유럽 추리소설계의 전설적인 작품이라는 <로재나>가 눈에 띄었다. 아... 예전에 읽다 중도 이탈했던 작품이었다. 사실적인 걸 넘어 지지부진한 형사들의 지난한 범인 추적의 과정이 너무나 매력 없게 읽힌 탓에 숱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덮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작년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권이 국내에 완간됐다는 소식은 들었다. 10권을 완간하기까지 6~7년 걸린 걸 보면 후속작에 대한 독자들의 성원이 마냥 열광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 물론 다른 문제 때문이었을 순 있지. 어쨌든 그래도 전권이 완간된 걸 보면 이 클래식한 추리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들한테도 자신의 매력을 어느 정도 어필하는 데에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비록 중도 이탈하긴 했어도 7년 전 일이고 북유럽 추리소설에 다시 관심이 가고 있던 차에 큰맘 먹고 다시 펼쳐봤다. 과연 나는 10권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1권인 <로재나>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역시나 지루하고 요즘 추리소설에 비하면 극적인 맛이 덜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에 집필된 작품인 만큼 이해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이 작품 이전엔 북유럽 추리소설 또한 영국이나 일본처럼 수수께끼 풀이에 중점을 뒀지만 <로재나>를 기점으로 현실적인 경찰 조직 묘사, 사회 문제 비판의 색채를 띈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됐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의의가 대단한 작품인 건 알겠는데 역사는 역사일 뿐 완성도는 어땠는지 살펴보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추천사에서 헨닝 망켈은 이 작품의 특징으로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야기라 언급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해결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과 형사들의 고생, 헛발질이 필요하단 걸 강조한 말이다.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봐 참 잘 포장했는데 이 말을 온전히 공감하는 독자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어떤 독자들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어떤 사람들은 결말에서 범인을 잡을 때 쾌감을 더해주는 서사적 장치라 여길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헨닝 망켈이 자신이 처음 읽던 시기에 느낀 강렬함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클래식은 클래식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의의가 있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나로선 이러한 서두에서의 언급은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결국 호들갑이지 않았나 하고 중얼거렸다. 현실적인 수사 묘사, 사회 비판, 그래서 뭐? <로재나>가 선구적인 작품일 순 있어도 오늘날에도 과거에 처음 출간됐을 때와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부분적으로 흥미로운 요소가 산재한 작품이란 건 부정하지 않겠다. 피해자의 정체가 밝혀지던 대목, 피해자가 생전에 다소 문란했던 사생활이 밝혀짐에도 형사들끼리 저급하게 뒷담화를 까지 않았던 것, 주인공 마르틴 베크가 현실에 있을 법한 형사라 괜히 더 이입이 가능했던 것, 그가 용의자를 심문하거나 최후반부에 드러나는 범인의 똘끼, 그 범인을 취조할 때 전혀 말려들지 않고 프로패셔널하게 일처리를 하는 마르틴 베크 등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았다. 지금 기준에선 화려함이라곤 없지만 정석적인 구조에 탄탄한 마무리가 여운을 준 작품이었다.


 요약하자면 출판사와 띠지, 서두와 해설의 호들갑을 제외하고 본다면 편안하게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었다. 60년대 스웨덴의 모습이나 첨단 과학 없이 노가다적인 방식으로 범인을 잡아낸 형사들의 고군분투는 마치 일일 드라마를 보듯 묘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 마지막 장까지 읽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과연 나는 10권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글쎄, 일단은 2권인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와 시리즈 최고작이라는 <웃는 경관>은 읽어볼 생각이다. <웃는 경관>은 명성도 명성인데 제목이 궁금해서라도 읽을 것 같다. 또 모르지. 그 작품까지 읽고서 완전히 이 시리즈의 팬이 돼버려서 10권까지 빠르게 독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재나>를 재평가할 일은 적어도 지금으로선 요원해 보인다. 물론 이것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P.S 이 책의 저자 두 명의 원래 직업은 기자였다고 한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도 기자였는데, 그러고 보니 스웨덴, 아니 전세계의 추리소설가들 중에 기자였다가 추리소설가로 전직하는 경우가 은근히 흔한 편인 것 같다. 요코야마 히데오도 떠오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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