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아줌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7.7


 크리스마스 때 생각이 나서 읽은 <산타 아줌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색 동화다. 산타클로스가 되겠다며 면접을 보게 된 제시카(여성)를 향한 각국 산타클로스들의 치열한 갑론을박이 주된 내용이라 아이보단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작품이다. 다만 결말까지 전개가 순조롭고 내용도 짧은 데다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을 해피엔딩이기에 막상 어른들한테 다소 썰렁하게 읽힐 듯하다.

 전에 읽었을 땐 나름대로 신선한 작품이라 여겼다. 특히 작품의 원서가 발간된 2002이란 시기를 생각하면 약간 선구적인 측면도 있다고 느껴졌다. 여성은 어째서 산타클로스를 하면 안 되는가, 왜 백인의 고령 남성만이 산타클로스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요새 굉장히 많이 나오는 종류의 질문이고 때문에 이젠 조금 식상한 정도라 이 작품이라고 특별히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허나 작중 일본 산타클로스가 여성이 산타클로스가 안 된다는 이유는 다시 읽어도 코웃음이 날 만큼 인상에 강하게 박혔다. 말인즉슨 산타클로스는 부성의 상징인데, 요즘 일본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로 전락해버려 부성의 상징인 산타클로스마저 여성이 맡아버리면 얼마 남지 않은 부성의 권위는 고꾸라져버릴 것이다. 라는 게 작중 일본 산타클로스가 하는 주장의 골자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 우선 산타클로스가 특별히 부성의 상징인지 돌이켜봤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냉정히 말하면 우리가 산타클로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선물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선물을 주는 할아버지여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착하게 한 해를 보내면 보답으로 선물을 받는다는 그 이야기에 교훈이 있어서 자녀들한테 들려준 것이지 그 이야기에 성별이나 인종 등 외적인 요소를 일일이 재단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없어서 상술한 일본 산타클로스의 주장은 기괴하게 들렸다. 그런데 실제로 저렇게 이 주장 저 주장 끌어모아 딴지를 걸 사람이 있을 것이라 기괴하면서도 현실적으로도 느껴졌다.


 아무튼 이 주장에 일부 산타클로스들은 동정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산타클로스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아들에게 잊지 못할 따뜻한 선물을 주고 싶은 제시카의 마음이 산타클로스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녀는 결국 최초의 여성 산타클로스가 된다. 자칫 잘못하면 서슬 퍼런 갈등의 장이 될 뻔했지만 분량의 문제인지 동화의 정체성을 중시한 탓인지 갈등은 싱겁게 해소된다. 이와 같은 결정에 분명 납득 못할 산타클로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목적을 달성했고 변화는 이뤄졌으니 잘 됐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약간 의문은 남지만 그래도 뒷맛은 깔끔했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감상함과 더불어 뜻하지 않게 요즘(당시) 일본의 아버지들이 겪는 처량한 신세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던 독특한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특유의 따뜻함에 현실적인 색채를 더했으니 천편일률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질린 사람들한테 잘 맞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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