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 제4권 부패와 자각의 시대 - 믿고 보는 신일용의 인문교양 만화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4
신일용 지음 / 밥북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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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나는 지금까지 동남아시아 국가로 여행을 네 번 떠났다. 말레이시아 한 번, 태국 한 번, 작년에 베트남 두 번. 은근히 많이 가본 편이지만 그렇다고 동남아에 대해 아는 거라곤 얼마 되지 않는다. 물가가 싸고 덥고 휴양하기에 좋은 곳이란 인상이 강하고 그 나라의 역사나 언어에 대해선 수박 겉 핥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배탈이 거하게 났던 말레이시아, 코로나 직전 마지막 여행지 방콕, 코로나 이후 처음 간 여행지 하노이...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여행지들이기에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갈증을 제대로 해소시킨 만화로 저자는 최대한 밀도 있게 압축을 해도 4권이나 나왔다고 서두에서 미안한 듯 말하지만, 읽다보면 오히려 두세 권은 더 나와도 될 정도가 아닌가 싶었다. 책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동남아시아가 워낙에 미국 뺨칠 만큼 여러 인종과 문화가 혼합된 곳이라 역사도 다채롭고 깊이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밀도를 유지하고 분량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필리핀의 호세 리살과 베트남의 호찌민이 왜 죽어서도 그 나라 국민들한테 절대적인 지지와 예우를 받는지, 싱가포르는 어쩌다 말레이시아한테 독립을 '당하고' 이내 리콴유라는 독재자가 어떻게 나라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는지, 미얀마와 태국의 복잡하고 연민이 느껴지는 근대사와 동병상련이 느껴지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근대사, 무수히 많은 독재자 중 가히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캄보디아의 폴 포트...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너무 많아 약간 부끄럽기도 했고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게 됐다.

 <먼나라 이웃나라> 스타일의 학습 만화긴 하지만 이 책은 정치/문화/역사에 관심이 지대한 성인 독자가 아니면 그 재미와 유익함이 어필되기 힘든 만화였다. 그만큼 취향에 맞으면 이만한 만화가 없을 테고, 나 역시 일부 파트는 생각보다 내용이 깊어서 읽기 버거웠지만 그건 내가 연달아 읽어서 그런 거지 생각날 때마다 파트별로 끊어 읽으면 지식 습득의 효과는 상당할 터다.


 개인적으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이 마젤란도 마젤란의 선원 12명도 아닌 그 배에 올랐던 말레이시아인 노예라는 것과 내가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단편소설인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이 언급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유럽과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아직도 선진국, 특히 서구의 시선에서 보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지지리 궁상맞고 결점이 많은 나라들이 많긴 하다. 그 시선은 일리가 있으며 자국 사람들도 그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지들이 본인들 이득에 따라 이용한 탓에 동남아 국가들이 아직도 피해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역겹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구의 힘일까 문화의 저력일까 힘든 역사를 견뎌낸 끈질김 덕분일까? 책에서 접하는 근대사를 보면 진작 나라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비극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일부 국가에선 현재진행형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외세에 시달리고 남북으로 분단되기까지 한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역사를 가진 국가라고 자평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남아시아 국가들만 봐도 우리와 비슷한 공감대의 역사를 가진 나라는 많다. 우리 역사가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처절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어느 나라에나 보편적으로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가 롤모델로 삼았던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은 식민지 신세를 겪지 않고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이라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초라하고 한스럽게 느껴지는 것일 터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보편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이건 뭐건 그걸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걸, 그렇다고 우리와 비슷하게 힘든 나라들이 결코 열등해서 극복하지 못하는 게 아니란 걸 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와 선입견을 없애고자 기획했던 신일용 작가의 책은 내용적으로나 만화적으로나 훌륭한 책이었다. 만화치고 글이 너무 많이 더디게 읽히지만 그만큼 밀도가 높았다. 또 글이 많다고 만화적 재미나 그림이 후달리는 것도 아니니 - 유려한 화풍은 아니긴 하지만 - 만화를 좋아하고 동남아에 관심이 있거나 동남아로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동남아 어딘가로 여행을 떠고 싶어졌는데... 어디로 갈까? 어디든 가기 전에 이 책을 다시 읽고 갈 것이다.


 p.s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단편소설은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장편소설은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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