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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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어디까지 실화고 어디부터 픽션인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본인의 경험을 유려하고 문학적으로 풀어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일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 작가지망생의 답답한 심정이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문학으로 승화됐다는 것인데,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긴 하나 글의 진솔함과 주인공의 직업 덕분에 조금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한국어 수업' 시리즈 1편에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주인공이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2편에선 한국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친다.

 그러고 보니 장르 문학이 아닌 보통의 한국 문학에서 이렇게 시리즈물이 나온 경우가 참 드물지 않나 싶다. 동일한 주인공이 두 편에 걸쳐 성장하는 이야기가 제법 신선했는데 각각의 작품이 꼭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것이 아닌 만큼 개별적인 완성도가 출중한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지점이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볼 때도 느끼지만 요새 나오는 시리즈물은 너무 후속작을 위한 예고편으로만 기능해 그 점이 늘 불만이어서 하는 말이다.


 동일한 주인공이 나오고 주인공이 처한 환경도 나라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으나 1편과 2편은 꽤 다른 양상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1편은 이방인으로서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국어인 한국어부터 자신의 과거의 삶의 족적마저 어색해지고 현실감이 떨어져가는 묘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2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하며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며 여운을 안겨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편은 한국이 배경인 만큼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익숙하게 다가와 친국하게 읽혀 신선함은 덜했던 반면 1편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의 고충'처럼 내가 쉽사리 경험하기 힘든 독특한 직업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어 훨씬 흥미로웠다.

 이 두 권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 역시 한 편의 소설을 완결을 짓고자 고군분투했는데 그렇다 보니 주인공의 고뇌나 희로애락에 적잖이 공감이 갔다. 좀 더 눈에 명확히 그려지면서 건실적인 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꿈을 쫓기엔 이젠 시기적으로 너무 뒤늦은 것 아닌가 하는 주인공의 고민은 대다수의 작가 지망생, 예술가 지망생에겐 공감을 유발하는 대목일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처지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고민을 하니 작가는 자신의 고민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독특하게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었을 텐데 작가는 이 부분을 정면돌파로 수월하게 해결한다.


 때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만 픽션답게 약간의 기승전결의 틀만 갖춘다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문학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평범한 인생이란 없는 것 같고 어떤 시선으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느냐에 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덕분에 나도 소설을 쓸 때 적잖이 힌트를 얻었다. 문학을 너무 만만하게 여겨서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여겨서 그리 전전긍긍했었나 싶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는데, 나도 내 삶을 너무 경시하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을 쫓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봤고... <초급 한국어>에서 주인공이 한국어를 깊게 들여보자 낯설음과 어려움을 느낀 것처럼 그 책을 다 읽은 뒤 나도 내 지나온 삶이 점점 그렇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 읽는 내내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오랜만에 공감 가는 이야기를 읽어서 반가웠다. 학교 다닐 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학교 과제로도 비슷한 이야길 많이 접했는데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이런 창작물을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 후속작으로 '고급 한국어'...가 아니라 '실전 한국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데(ㅋ) 꼭 나왔으면 좋겠다. 그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그리고 그 작품을 읽을 때 내 삶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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