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욜로욜로 시리즈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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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의 정체를 상상해보는 가상 역사 소설, 이른바 팩션(fiction과 fact의 합성어)이다. 스페인도 아닌 오스트리아 국적의 작가 라헐 판 코에이는 이 개의 정체에 대해 아주 참신한 해석을 내놓는다. 불구의 몸을 가진 장애인인 바르톨로메를 내세우면서 독자로 하여금 당시 스페인의 극단적인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당시 스페인에서 장애인이란 신도 외면한 사람들이란 인식이 있어 날 때부터 죄를 짊어진 존재, 아무렇게나 하대해도 상관이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간주했으며 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숨겨야 하는 처지에 시달렸다. 아니, 차라리 사랑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이 작품 속 바르톨로메의 아버지 후안처럼 장애인 자식을 아예 없는 자식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몇몇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장애인이나 흑인 노예라 할 지라도 선택받은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대우와 존경을 받아가며 살아갈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은 당연히 왕가의 선택을 말하는데 주로 두 가지 기준으로 선택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압도적인 재능, 가령 그림이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왕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 작품에선 아직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의 '사랑'을 받는 난쟁이들, 시녀들, 그리고 공주의 명으로 인해 인간개가 된 바르톨로메가 해당된다. 바르톨로메는 곱사등이의 몸 그대로 공주를 알현할 순 없고 개로 분장해야 했다. 아무리 불구의 몸이고 친부에게도 외면당한 존재이며 한 나라의 공주의 명이라지만 친부의 손에 직접 몸이 씻겨져 공주에게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는 과정은 절로 눈살 찌뿌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가 마르가리타 공주 같은 왕가의 사람들을 마냥 악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마르가리타 공주의 경우 왕가의 피를 물려받았다 뿐이지 아직 부모의 관심이나 자기 또래의 친구가 필요한 철부지 아이인데 왕족이란 이유로 체통을 지켜야 해서 남들 모르게 외롭게 자랐고 그 탓에 어딘지 괴팍한 취향이 형성돼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요지경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악인이라고 하면 왕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명령에 충실하거나 타인에게 비도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후안이나 니콜라시토 같은 작자들을 꼽을 수 있겠다. 후안은 당시 기준으로 매정하고 부모 자격도 없는 인물이지만 차츰 죄책감을 느끼며 바르톨로메를 부끄러이 여긴 걸 뉘우치고 나아가 아들을 직접 구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1부가 다른 가족들이 가장인 후안의 눈을 피해 바르톨로메에게 몰래 글을 가르치는 내용인 걸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변화다. 이 변화의 과정이 이번에 이 작품을 두 번째 읽음에도 급작스럽게 느껴졌던 건 아쉽지만, 한편으론 너무 신파스럽지 않고 입체적으로 후안이라는 인물을 그려낸 것도 같아 눈길이 가기도 했다. 사극을 접하다 보면 가끔 과거의 인물이 너무 현재 우리 기준에서 봤을 때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급진적이라 오히려 현실성을 반감시키거나 혹은 우리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미개하고 극악무도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는데, 후안은 문제가 많긴 해도 작품 외적인 측면에선 당시 시대상을 잘 가늠하게 해주는, 이른바 고증이 잘 된 인물상이라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니콜라시토는 바르톨로메와 같은 난쟁이지만 선배로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르톨로메를 배려하긴커녕 자신이 공주의 유일한 난쟁이고 다른 난쟁이는 방해물로 간주하며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장애인이라고 다 같은 성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끼린 동지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면서 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잘 역설한 캐릭터이며 이런 현실감 있는 악역은 이야기에 적잖게 몰입도를 선사한다. 늘 느끼지만 악역이 등장해야 이야기에 긴장감이 조성되며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공식이다. 바르톨로메가 니콜라시토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궁금해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다. 이 미치도록 비정하고 현실적인 상황은 기대보다 싱겁게 마무리되지만 그래도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긴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요번에 스페인 여행 때 직관한 <시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감상하고자 이 작품을 다시 읽었다. 허나 <시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보단 스페인의 시대상과 마드리드의 분위기,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더 눈길이 갔는데, 집필의 시작이 <시녀들>의 개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판이 커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데, 고전 명화의 배경을 살펴보면 필연적으로 당시 시대상, 화가의 삶을 살펴보게 된다. 개에 주목했다고 해서 정말 개 이야기만 하려고 했다면 이 정도로 깊이 있는 이야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바르톨로메의 의지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개라는 동물을 접목시킨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용감하고 충직한 개'보단 장애인의 삶을, 장애인이란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바르톨로메의 선택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서양도 그랬지 몰랐는데 동양에선 '개 같다'는 말은 결코 좋은 표현이 아니다. 서양은 그래도 내가 미국이나 노르웨이, 이번에 간 스페인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람들이 개를 정말 좋아해 막연하게 그 나라들엔 개를 활용한 욕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론 내 생각과 다른 모양이다. 개가 아무리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라지만 인간에게 직접 '개 같다'고 말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설로 통하는 듯하다. 하긴 인간은 인간일 뿐 다른 존재로 비유당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겠다.


 엉뚱하고 참신한 상상에서 비롯된 팩션의 정수를 보여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역사나 장애인 인권, 그리고 청소년 성장문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시대의 한계 탓에 바르톨로메가 꿀 수 있는 꿈에도 제약이 걸리지만 그래도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지지하는 이들을 만나고 오히려 꿈을 꾸는 것에 제약이 있기에 그 꿈이 더욱 소중해지기도 하는 등 성장문학 특유의 뭉클한 장면과 감정선이 많은 작품이라 삶에 지친 분들에게 추천한다.

 장애인 이야기를 보고 지친 마음을 달래라고 하는 것은 좀 불건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바르톨로메가 장애인이란 것에 집중하지 말고 일종의 은유로 생각하고 읽으면 한 명의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기도 하다며 더욱 공감하며 읽게 것이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과 흔치 않은 장애인 주인공이 등장함에도 공감할 수 있다니... 다시 읽어도 대단한 작품이다.

물론 이것은 해석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역사라는 것이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행복한 오해‘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행복한 오해일 테니까. - 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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