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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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그림체와 미스터리를 쫓는 이야기의 동력, 그리고 기분 좋은 결말이 일품인 굵고 짧은 작품이다. 짧은 분량 때문에 완성도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올해 안에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된다고 하니 그때 화제를 모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본심을 말하자면 영상화를 굳이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만큼 자체적인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나머지 행여 기대가 배신당할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연출이라든가 성우 캐스팅이라든가 막상 영상으로 보면 내가 느낀 감성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어느 순간부터 실사화, 영화화, 2차 창작이 기대되긴커녕 긁어부스럼처럼 느껴진다. 아직 영화 포스터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말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여정도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작중 내내 시선을 끈 부분은 일상을 매우 아름답게 감미롭게 조명한 점이다. 학교 풍경이나 정원 관리인이나 비밀 장소들을 일상적이면서 조금은 환상적인 연출을 가미한 묘사가 굉장한 설렘을 자아낸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한 동시에 반대로 나는 세상을 시큰둥하게 턱을 괸 채로 다소 탁하게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 하고 반성도 해보았다.

 작중에서 호연이의 말에 의하면 모든 장소와 인간은 관심을 가지고 인지하는 순간 내 앞에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의미 있고 환상적인 순간과 장소는 어디 멀리에 있어서 힘겹게 찾아가야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산재한데 내가 알지 못할 뿐인 걸까. 얼마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경험한 내게 일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호연이의 말은 제법 울림을 안겨줬다.


 멀리 가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듯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아름답다고도 여기지 못하는 감정도 있을 것이다. 여행 중엔 이런 생각을 못해봤다. 누군가가 여행은 걸어서 읽는 책이고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행으로 얻는 것도 있고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는 것도 있다. 여행이 곧 책이고 책이 곧 여행이라는 말이 지금 불현듯 진심으로 와 닿았다. 여행하느라 한동안 소홀히 했던 독서에 다시 본격적으로 매진하자는 다짐이 일었다. 앉아서 하는 여행도 설렌다.

모든 장소는 들어가기 위한 방법이 달라. 사람도 마찬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인지하는 순간 내 앞에 존재하게 되는 거야. - 여섯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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