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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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최근 러시아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보니 자연스레 이 작품이 떠올랐다. 소련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아동 연쇄살인을 바탕으로 집필된 <차일드44>는 의외로 소련의 실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톰 롭 스미스라는 영국인 작가의 작품이며 데뷔작이지만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들고 이름 있는 추리소설상을 수상하고 톰 하디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관객과 평단, 심지어 원작 팬들한테도 외면당했고 몇 년 전에 나도 영화의 실태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원작을 다시 읽으니 그 수준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경직되고 허황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사회주의의 이념도 문제지만 그걸 실현하고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자국민 학살도 주저 않는 50년대 소련의 분위기가 더 문제일 텐데 이와 같은 총체적 난국을 <차일드44>처럼 잘 구현한 작품을 난 아직까지 읽은 적이 없다. 전체주의를 겨냥하고 실감나게 묘사하며 비판하는 작품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실존했던 나라를 배경으로 두고 실재했던 사건을 다룬 만큼 충격도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배경과 사건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은 전혀 다른 배경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연쇄살인은 80년대에 내막이 드러났는데 이 즈음은 소련의 밑천이 드러나 국가가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인 터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누그러진 편이라고 한다. 적어도 아직 스탈린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50년대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스탈린이 언급돼서 하는 말이지만, 스탈린의 사인死因은 사실상 본인이 자초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고 들었다.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몰빵하고 독재자로서 군림해야 하니 국가의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정했고 그 탓에 늘 과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탈린은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말았다는데, 문제는 그의 수행원이나 부하들은 스탈린이 업무를 보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해진 규율을 어기고 괜히 나댔다가 스탈린에게 찍혀서 숙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아무도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러는 동안 스탈린은 추정컨대 사망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엄청난 고통 속에서 말도 못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아니 전체주의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두 가지 짚어낼 수 있다. 소수의 권력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 긴급 사태를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피해는 권력을 만들어낸 본인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자로 군림하기 위해 온갖 그럴싸한 말로 자기자신과 신념을 신격화해봐도 그래봤자 일개 인간의 몸을 지녔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피로와 고통에 직면하면 고꾸라지기 마련이거늘... 삶이란 이처럼 덧없는데 뭐라도 되는 것처럼 발버둥친 꼴처럼 보여 스탈린이고 사회주의고 다 안쓰럽다.


 작중에서 삽질을 해대는 사회주의 추종자들이나 레오와 라이사, 네스테로브의 수사를 방해하기까지 하는 무리들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일그러졌더라도 어쨌든 신념에 가득차서 주인공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개중엔 바실리처럼 개인적인 복수심에 미쳐 선을 넘는 자도 있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당시 시스템 자체가 반문을 제기하는 것이 곧 자살 행위나 다름없던 지라 중상모략과 음모론을 꽃피우기 쉬웠을 뿐 설령 정상적인 시스템이었더라도 바실리에 의해 레오와 라이사 부부는 결국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 부부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과정을 살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의 개였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신념이 흔들리고 정신이 붕괴되고 일종의 도피처로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을 파헤치는 일련의 전개가 몰입도와 개연성이 높아 다시 읽음에도, 또 힘겨운 내용임에도 술술 읽혔다. 레오와 라이사의 심리, 처음엔 반목했다가 후에 아군 편에 서는 네스테로브의 심리와 뒤로 갈수록 묘한 공감대를 자아낸 바실리의 심리, 아이들을 죽인 범인의 심리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고 저마다 실감나기 그지없는 속사정이 있어 간만에 읽는 맛이 났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었을 땐 별로라 생각했던 범인의 정체나 심리도 다시 읽으니 복선이라든가 작가가 실제 사건을 어느 정도로 참고하고 모티브 삼았는지 느껴져 이번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소름을 느끼며 읽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같은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결국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범죄가 잉태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해석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회주의 덕에 만인이 평등해진 사회, 즉 낙원에선 살인 같은 범죄는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에 함몰된 나머지 그 믿음을 부술 근거가 눈앞에 들이대져도 자본주의측 스파이가 정교하게 조작한 증거물이라며 거들떠도 보지 않고 실제 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면 마치 이때가 기회라는 듯 범인으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나 동성애자들을 지목하고 숙청해버리는 썩은 일처리... 이 과정이 사실적이고 꾹꾹 눌러 쓴 듯한 문체로 묘사돼 이런 요지경이 실제로 벌어졌을 것이며 지금도 강도가 약해졌을 뿐 분명 벌어지고 있으리란 씁쓸한 의심도 들었다. 이쯤 되면 전체주의는 공권력의 부패를 경계할 장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부패를 권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비관적인 세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움직인 레오나 그 레오의 행동에 크나큰 동기를 심어준 라이사의 입체적인 캐릭터성도 작품의 몰입도에 큰 기여를 했다. 아까 서두에서 영화 <차일드44>가 원작의 팬들한테도 외면당했다고 하는데 아마 라이사가 평면적으로 묘사된 탓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력과 판단력이 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소련 전역에 걸쳐 아이들을 죽이고 다니는 웬 미친놈을 잡고자 한때는 증오하기까지 한 레오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레오의 변심 못지않게 개연성 있었고 작가도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레오 같은 특수요원이 아닌 일반 사람이 보여주는 용기와 생존력은 오히려 나를 비롯한 모든 일반 독자의 공감대를 자극하므로 작품의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차일드44' 3부작 중 남은 두 개의 작품에서 레오와 라이사 부부가 겪을 파란만장한 일들이 참 걱정되면서도 기대된다. 이미 읽은 작품임에도 1편이 너무 훌륭하다보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내 기억에 2편은 그닥이었고 3편은 2편의 부진을 만회한다는 인상이었는데 지금 읽으면 다르게 느낄는지 모른다. 당장 이번 작품만 해도 우크라이나 대기근 같은 사건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렇게 두 나라 사이를 어떻게 악화일로를 걷게 했는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었기에 작품의 이야기가 더 깊이감 있게 다가온 것처럼 2편도 3편도 새로운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없이 우울한 내용의 소설이었지만 반대로 독자 입장에선 읽는 내내 너무나 행복했던 작품이다. 읽는 맛이 탄탄하고 이렇게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도 흔치 않기에 자꾸 얘기하지만 다시 읽음에도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 이 맛에 읽은 책을 시간내서 또 읽는 거지. 다시 읽어서 후회하는 일이 빈번해진 요즘에 이런 걸작을 읽으니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없이 우울한 한편으로 인생과 희망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라 뒷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 본 영화 <타이타닉>도 그랬지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에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다음에 읽을 땐 지금보다 더 약해지려나. 음,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인상깊은 구절


 누군가의 편을 든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그 사람의 운명과 한데 묶는 것이다. - 133p


 우리나라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전 세계인들이 우리의 혁명을 증오하고 있어요. 우리는 반드시 조국을 지켜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적이 우리 자신이더라도 말입니다. - 145p


 그들의 도덕적인 나침반은 너무나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북쪽이 남쪽이 됐고 동쪽이 서쪽이 됐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런 불안한 시기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행동 방침은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188p


 예방책

 이 말은 어떤 죽음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독일군 병사가 빵 한 덩어릴르 발견하게 하느니 자국민을 죽이는 것이 낫다. 여기에는 한 점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사과도 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살상에 반대하면 반역행위로 간주되었다. 부모님이 그녀에게 가르친 애정에 대한 교훈들, 사이좋은 부모 밑에서 아이가 보고 들으며 배웠던 교훈들은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런 행동은 다른 시대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집이 있다는 것, 보금자리가 있다는 느낌, 그런 허망한 감정은 아이들이나 집착하는 것이었다. - 250~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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