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딴딴 시리즈 1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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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제목이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딱 '수어' 한 글자여서 수어에 대한 엄청난 성찰이 담겼겠거니 기대하고 읽었지만 얇은 분량에 맞게 기대보단 얄팍한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저자는 성실하게 자료도 조사해가며 열심히 글을 썼지만, 작가 본인이 인정하듯 아직 수어를 배우게 된 기간이 일천한 나머지 수어로 시작하다가 다른 얘기로 전개해버리는 탓에 책이 얇음에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수어의 역사나 매력에 대해 얘기하거나 수어를 배우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맛깔나게 담긴 에세이일 줄 알고 읽었으나 수어에 얽힌 잡다한 이야기나 저자 자신의 뇌피셜 내지는 사회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는 소외감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얘기로 방향이 틀어져 애당초 이럴 거면 책의 제목을 왜 '수어'로 지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됐다. 큰 틀에선 다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지만 조금은 전문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길 듣고 싶었는데 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를, 저자 본인이 감명 깊게 읽거나 본 책과 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이래저래 불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작가의 본래 직업이 영화 에세이스트라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소개하고 설득시키는 솜씨는 탁월했는데, 그 솜씨가 수어라는 키워드와 엮는 데엔 미치지 못해 뒤로 갈수록 시큰둥하게 읽혔다. 사실상 맨 뒤에 실린 몇몇 수어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수어에 대한 내용은 적은 편이라... 이러니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이렇게 미사여구 없이 단어 하나로 이뤄진 제목은 본인에게 조금 과분하리라 생각은 안 해봤는지 묻고 싶다.

 물론 한 분야에 완전히 통달한 작가만이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제목이든 뭐가 됐든 속았다고 여긴 독자에게도 실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책이 그닥이었으면 끝까지 읽지 않으면 될 일이니까. 글의 내용이 기대보다 전문적이지 않다고? 글이란 모름지기 전문적이어야 한다며 기대한 독자도 일정 부분 잘못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그렇게 내 탓을 하며 넘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말만은 해야겠다. 다 좋은데, 수어를 공부하려는 작가의 포부나 인간애 넘치는 것도 다 좋은데, 결국 이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수어를 배우고 싶다'는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가 어떤 계기에서건 수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에 이르렀는가는 잘 알겠고 훌륭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 일을 독자에게 어필하기보다 내면의 이야길 꺼낸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터라 아무래도 호소력이 부족했다.

 작가의 실제 경험보다 머릿속 생각이 비중을 많이 차지해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작가 소개란에 '수어 초급자'라 적혔을 때 미리 알아봐야 했는데...

이 세상에 가장 평화로운 단어가 있다면 그건 ‘누구나‘가 아닐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누구나 살 수 있는 세상.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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