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9.1


 많은 사람들이 <중력 삐에로>를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는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대사, 사유가 다소 장황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고 특히 신파를 신파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원숙미가 돋보여 그것만으로도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가족애, 특히 형제애가 압권인 이 소설은 작중 세세한 단점들을 모조리 뒤엎을 정도라 책장을 덮은 뒤에 몰려오는 여운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세세한 단점들을 몇 가지 얘기해보자면, 우선 장황스럽고 개연성이 헐거운 전개를 들 수 있겠다. 분량도 긴데 초반부터 사건의 진상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단 점도 마이너스적인 요소고 이야기의 미스터리적 요소들이 허무하고 약간은 억지스러운 원리로 작동하고 있어 독자에 따라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뭘 그렇게 논리니 개연성이니 따지냐, 그만하면 설득력 있지 하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려나? 이에 대해선 확언하기가 어렵다.


 또 어떤 사람은 밝고 급하게 난 결말을 아쉬운 점으로 꼽던데, 나는 그 의견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감동과 여운이 남는다는 점에서 좋은 결말이라 생각하는데, 다만 몇몇 인물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완수하는 일련의 전개가 지금껏 읽어온 추리소설들과는 다르게 허술하고 얼렁뚱땅식인 나머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일이 그렇게 유리하고 깔끔하게 흘러갈 리 없는데... 그래서 어째 동화를 읽은 느낌까지 든다.

 희대의 강간마에 의해 자신과 씨다른 동생이 생긴 형 이즈미와 자신의 유전자를 증오하는 동생 하루,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루도 아들로 키우는 형제의 아버지, 작중에선 이미 고인이 된 형제의 어머니 이 네 사람의 가족애를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은 <중력 삐에로>의 거룩한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후에 집필하는 또 다른 대표작 <골든 슬럼버>에서도 강간은 살인보다 악질적인 범죄라 일갈하는데 그때 그 구절은 <중력 삐에로>를 집필하면서 사유한 것이 그대로 반영된 구절일 것이다.


 강간을 저지르는 쓰레기의 쓰레기 같은 사고회로를 그럴싸하고 소름 끼치게 묘사한 작가는 여느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악을 묘사하는 탁월한 재능을 여지없이 뽐낸다. 기본적으로 유쾌한 작풍에다 등장인물도 유쾌하기에 이런 악인들의 등장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강간이 나쁘지 않은 이유가 다치는 건 상대방이고 나는 그걸 즐기기 때문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인간은, 아니 그보다 더한 인간이 현실에 무척 많을 듯해 읽으면서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엇나가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사람의 인생은 유전자로 전부 설명되지 않음을 작가는 온몸으로 역설하고 있다. 나 역시도 유전자가 모든 걸 설명하지 못하며 사람은 유전자보다 후천적인 성장 배경이 중요하다 믿기에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접근에 몇 번을 고갤 끄덕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도 과학자의 말보다 소설가의 말을 더 신뢰하는 이유를 책에서 읽어낼 수 있어 정말 더없이 반가웠다.


 제목만 봐선 무슨 이야기인지 유추가 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중력 삐에로>은 엉뚱함과 진지함을 둘 다 겸비한 작가만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동화이자 복수극이었다. 어쩌면 작품의 제목은 엉뚱함과 진지함 두 개념을 겨냥하며 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이 작가는 거의 신인 시절부터 이런 어마어마한 스킬을 작품을 녹여낸 것이다. 새삼 천재가 괜히 천재가 불리는 게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다음엔 작가의 신작을 읽게 될는지, 아니면 이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읽을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작품도 적잖이 기대된다.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기가 죽는 법이다. - 14p


자신을 천재라 부르는 천재는 별 볼일 없어. - 54p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 109p


근거 같은 걸로 자신감을 가지면, 좀 비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 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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