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0


시리즈 전편의 스포일러 있음 


 이 시리즈는 뭐랄까... 1편에서 끝냈어야 하는 게 나았다고 본다. 2편으로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하고 3편은 세계관을 더욱 확장시켰지만 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1편의 다섯 주인공의 캐릭터를 모방한 새로운 다섯 명 살인게임을 즐기는 2편의 설정은 다소 억지스러웠고, 3편에서 1인 5역을 하며 불특정 다수에 문제를 내거나 아예 살인 생중계를 하는 건 참신했지만 아무래도 우려먹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관념이 마모된 인물들을 통해 인터넷 기술, 익명성의 병폐를 낱낱이 묘사하거나 극한의 악과 더불어 유희를 추구하는 방향성 자체는 그래도 이 시리즈만의 개성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럼에도 2편과 3편이 1편보다 못한 아우라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데엔 아무래도 유희로 다뤄지는 트릭들의 퀄리티가 그닥이기 때문이 가장 크다. 낭만의 복권이니 뭐니 떠들면서 이유도 목적도 없는 살인이 범람하는데, 그 사고방식 자체도 역겨운데 살인 방식과 해답이 드러나는 연출도 상투적이고 구려서 뒤로 갈수록 빠져들긴커녕 점점 의무적으로 읽게 됐다. 원한이 끓어올라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동기가 전무한 채 오직 유희 때문에 살인에 손을 대는 인물들을 보노라면 긴장감이고 완전범죄의 성사 여부고 뭐고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1편의 5인방은 진즉에 무대를 떠났건만 수준 미달인 캐릭터들이 선배의 인기에 편승하는 듯한 분위기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오리지널' 두광인, 잔갸군, 반도젠 교수, aXe, 044APD는 캐미도 재밌고 생김새나 말투, 그리고 선보이는 트릭도 모두 개성적이라 희대의 살인마들임에도 쉽게 부정하기 힘든 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편부터는 그저 어설픈 반복에 전편보다 더 선을 넘은 트릭이 나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마 2.0 잔갸군이 자신의 작은 체구를 활용해 시체 속에 은신한다는 트릭은 꽤 볼 만했지만, 2.0 두광인은 실망스러웠고 2.0 044APD는 허무했다. 2.0 aXe와 반도젠 교수는 너무 수수했고... 3편의 1인 5역 범인은 미친 정도로 따지면 시리즈 전체에서 으뜸이지만 선사하는 트릭의 기발함이나 완성도는 끽해봐야 중위권 수준을 맴돈다. 개인적으로 원격 살인과 투명 망토 트릭은 좋았지만. 특히 투명 망토 트릭을 얘기하면서 작가가 직접 개입하는 듯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이 얘길 하려고 이 시리즈를 집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트릭이 너무 쉬우면 실망이라 하고 너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뭐라 하고... 우타노 쇼고는 추리소설가의 고충을 작품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토로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어느 정도 본격추리소설적인 요소가 들어가지만 그래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포착하고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을 높이 사왔던 터라 순수하게 트릭을 추구하는 추리소설가로서의 고충은 나름대로 신선하게 읽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살인을 전제로 한 트릭만 다루는 걸까? 작가는 작중 인물들 중 그 누구의 입을 통해서도 이에 대해 고찰하지 않는다. 살인이란 극단적인 범죄와 추리소설적 트릭은 별개의 개념 아닌가? 작가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주제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고찰이 동반하지 않으니 작중 인물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 안달이 난 참에 밀실살인게임이란 좋은 핑곗거리를 접했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점이 1편과 후속작 두 편의 평가가 갈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뭘 토로하는 건 좋은데 2편과 3편, 분량으로 따지면 전부 합해 700페이지가 넘는데 그 안에 이 시도 저 시도 참 다양하게도 하느라 밀도와 완성도가 1편에 뒤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본격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알겠으니 4절은 그만 듣고 싶다. 만약 4편이 나온다면 1편의 5인방의 캐릭터성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등장인물과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우려먹은 나머지 두광인의 다스베이더 마스크에 대한 묘사만 나와도 신물이 나올 것 같으니 말이다.

 마니악스가 출간된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고 4편이 나올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타노 쇼고의 신작 소식 자체도 안 들린다. 추리소설에 관한 아이디어와 애정이 넘치는 작가인 만큼 <벚꽃~>이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같은 작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기를 팬의 입장에서 간절히 기도한다. 

이 행위는 못된 장난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저 행위는 무거운 범죄다. 그렇게 선을 긋는 기준은 뭐지? 개인의 감각이야. 사람마다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약국 앞의 개구리 마스코트를 훔쳐가는 건 괜찮지만, 그 마스코트를 창문에 집어던져서 유리를 깨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또 어떤 사람은 유리를 갠 것까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깨진 틈으로 안에 들어가서 금전등록기를 털면 안 된다고 선을 그을 거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안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빌리거나 물을 마시는 정도는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고. 어차피 보험에 들었을 거라며 영양 드링크나 위장약을 실례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약국에서 잔업하던 점원을 때려죽이고 ‘잔업 수당 늘리려고 일하지 마라.ㅋㅋ‘ 라고 트윗하는 녀석이 있다고? - 196~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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